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킨카쿠지 (문단 편집) === 킨카쿠지 방화 사건과 복원 === [[1950년]] [[7월 2일]] 새벽, 교토시 소방국에 킨카쿠지로부터의 화재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즉시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리전이 완전히 불타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사리전에는 화재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경보기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방화 시점에서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결국 46평에 달하는 사리전 전체와 내부에 비치되어 있던 관음보살상, 아미타여래상 및 불경과 장식이 전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리전과 별도로 국보 지정되어 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상도 소실되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사건 직후 승려들의 신원을 조사하였는데 [[1929년]]생으로 킨카쿠지의 견습 승려였던 하야시 쇼켄(林承賢)이 부재중이었으므로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색하였다. 그는 잠시 뒤 근처 야산에서 체포되었는데, 체포 당시 진정제를 먹고 할복한 채 쓰러져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곧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았다. 이후 심문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사회에 복수하고 싶었다" 등을 고백하는 등 [[조현병]]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미시마 유키오]]는 후에 이를 '금각에 대한 미적 갈망', '불교적 이상에의 동경과 관광지가 된 킨카쿠지의 모순적인 모습에 대한 반감' 등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근본적으로는 전후 일본의 혼란과, 종교적 가치관 등을 포함한 당시 일본 사회의 사상적 갈등을 배경으로 지목하는 학자도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rned_Kinkaku.jpg|width=100%]]}}}|| || {{{-1 화재 직후의 킨카쿠지 사리전.}}} || 방화 이후 킨카쿠지는 [[메이지 시대]] 수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상세 도면을 토대로 1955년 복원되었다. 상기했듯 금각은 [[오닌의 난]] 당시에 한 차례 소실된 적이 있는데, 문헌 조사 결과 초기의 금각이 더 화려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때문에 '창건 당시의 킨카쿠지를 재현하자'는 의도 아래 직전의 금박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인 '''20kg''' 가량의 금이 복원에 사용되었으며, 통상 0.1 마이크로미터 크기였던 금박은 5배의 두께인 0.5 마이크로미터로 커졌다. 처음에는 너무 복원을 서두르는 바람에 공개 직후부터 금박이 박리되는 등 문제가 제기되었고, "금각이 아니라 흑각(黑閣)이다"라는 오명까지 등장했다. 이에 [[문부과학성|문부성]] [[문화청]]은 1980년대 2차 복원을, 1990년대에 3차 복원을 통해 금각을 재차 개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접착제를 사용해 두꺼운 금박을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 화학적 처리가 동원되었다. 오늘날 일본 고건축계에서는 복원하면서 너무 금칠을 두텁게 하였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옛 금각과 비교해볼 때 고즈넉한 맛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복원이라고는 하지만 예전 사진과 비교하면 재창조 수준에 가까우며,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빗물을 유도하는 관도 더 길고 화려한 것으로 바뀌었다.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스프링클러 장비도 설치되는 등 여러 요소에서 현대적인 건축공학이 적용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킨카쿠지 화재 이전 1886년.png|width=100%]]}}}|| || {{{-1 화재 이전의 킨카쿠지 사리전(1886년 촬영, 컬러 복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킨카쿠지 02.png|width=100%]]}}}|| || {{{-1 복원된 현재의 킨카쿠지 사리전. 금박을 어색할 정도로 과도하게 덮었다는 비판이 있다.}}} || 일본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미시마 유키오]]가 이 소실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금각사》라는 소설을 쓴 바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 작품은 일본 특유의 [[탐미주의]], [[유미주의]]적 작품의 대명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학원사판 《금각사》 에 수록된 《우국》이라는 소설은 [[한국]]의 유명 작가 [[신경숙]]이 표절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금각사》의 방화 사건이 미시마의 극우적 천황 숭배 사상과 과격한 행동의 동기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