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르수스 (문단 편집) ====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소 아르메니아 왕국) ==== 이로써 반세기에 걸친 중세 동로마 제국의 킬리키아 개입은 종식되었고, 타르수스는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가 되어 안정을 누렸다. 다만 킬리키아 통합 직후 루펜(루벤) 3세는 안티오키아에 초대되었다 램프론 가문의 간계로 사로잡혔고, 동생 레본이 램프론 가문을 제압한 후에야 보에몽 3세에게 봉신 서약을 하고 풀려났다. 그후 루펜(루벤)이 양위하며 레본이 왕공이 되었고, 그는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1190년 6월에는 [[3차 십자군]]의 독일 부대가 타르수스에 당도하여 살라프 강에서 익사한 [[프리드리히 1세]]의 내장을 현지 성당에 봉안하였다. 외교적 노력의 결실로 레본은 1198년 초엽 타르수스의 성당에서 기존의 왕공이 아닌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올렸고, 이로써 소 아르메니아는 정식으로 왕국이 되었다. 다만 대관식과 함께 [[레본 1세]]는 수도를 킬리키아 동북부에 있는 시스로 정하며 타르수스는 점차 소외되었다가 1220년 내전 당시 레몽 루벤의 거점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1219년 레본 1세가 사망한 후 아르메니아 왕국은 선왕의 어린 딸 [[자벨(아르메니아)|자벨]]과 장성한 종손이자 보에몽 4세의 조카 레몽 루벤 간에 분열되었고, 후자는 교황의 지지와 함께 타르수스를 장악하였다. 하지만 1220년 자벨의 섭정 램프론의 콘스탄티노스가 타르수스를 포위하였고, 이에 레몽 루벤은 동맹인 구호기사단에 도움을 청했으나 그들 역시 안티오크 공국에 맞서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3개월 간의 포위 끝에 도시는 항복하였고, 포로가 된 레몽 루벤은 얼마후 옥사하였다. 1226년 콘스탄티노스는 아들 [[헤툼 1세]]와 자벨을 결혼시켰고, 이로써 루벤 왕가는 램프론 출신인 헤툼 왕가로 대체되었다. 13세기 중반 [[맘루크 왕조]]와 [[일 칸국]]의 대립에 있어 헤툼 1세는 후자에 복속하였고, 이에 1266년 여름 술탄 [[바이바르스]]의 부관 [[칼라운]]이 킬리키아를 공격하여 타르수스를 함락하였다. 헤툼은 몽골군과 함께 당도했으나 맘루크 군은 이미 전리품과 포로를 챙겨 회군한 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