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르수스 (문단 편집) ==== 헬레니즘 시기 ==== [[파일:CILICIA,_Tarsos__Balakros_Satrap_of_Cilicia_333-323_BC.jpg|width=600]] 마케도니아령 킬리키아 총독 발라크로스 (타르수스) [[파일:KINGS_of_MACEDON__Alexander_the_Great_336-323_BC.jpg|width=600]]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금화 (타르수스) 기원전 333년, 아나톨리아의 페르시아군을 일소한 알렉산드로스는 킬리키아에 진입하였다. 그는 타르수스 인근의 키드누스 강에서 목욕을 한 후 병을 얻었는데, 도시에서 요양한 후 회복하여 이수스 전투에 임하였다. 킬리키아를 상실하고 시리아의 다리우스 3세 진영에 합류했던 아라세마스는 이수스에서 전사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발라크로스를 임시 총독으로 임명했다가 메네스를 선임하였는데 그들은 마케도니아 본대가 소그디아나와 인도 원정을 수행하는 동안 아나톨리아 남부와 시리아 서부 일대를 평정하였다. 당시 타르수스 조폐소에서 헬레니즘 양식의 동전이 유래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요절한 이후 필로타스 & 크라테로스[* 1차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안티파트로스의 동맹이었으나 에우메네스에게 살해됨], [[페르디카스]] & [[에우메네스]], [[안티고노스 1세]]가 킬리키아를 지배하였다. . [[입소스 전투]]에서 안티고노스가 전사하자 안티파트로스의 차남이자 카산드로스의 동생 플레이스타라고스의 영지로 분봉되었다. 그러나 그는 안티고노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의 반격으로 축출되었고 데메트리오스 역시 소아시아 원정 도중 [[셀레우코스 1세]]에게 잡혀 죽었다.[* 다만 본거지인 테살리아는 데메트리오스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가 지켜냈고, 그는 이후 [[리시마코스]]가 셀레우코스에게 살해되고 셀레우코스 역시 암살되며 켈트 족이 남하하는 혼란기를 종식시키곤 마케도니아를 접수하여 안티고노스 왕조를 세웠다. 동시에 혼란을 틈타 아나톨리아 서부에는 페르가몬 왕국이 세워짐] 이로써 힘이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이집트 해군이 킬리키아를 점령, 타르수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토가 되었으나 내부를 정비한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1세가 반발하여 6차에 걸친 시리아 전쟁으로 이어졌다. 1차 전쟁에서 셀레우코스 군대는 킬리키아를 점령하였으나 이집트 해군에게 대패하고 점령지외에 카리아까지 빼앗겼다. --역관광-- 다만 그의 아들인 안티오코스 2세는 2차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킬리키아와 이오니아 등지를 점령하였다. (기원전 253년) 그러나 3차 전쟁은 다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대승으로 끝났고 킬리키아 대부분을 포함한 소아시아 및 시리아 해안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토가 되었다. 3차 전쟁에서 수도 [[셀레우키아]]까지 털린 셀레우코스 왕조는 안티오크로 천도하였고, 그와 이웃한 킬리키아 및 페네키아 회복은 왕조의 필연적인 과제였다. 이는 셀레우코스 조의 중흥을 이끈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에 의해 이룩되었다. 그는 비록 4차 전쟁의 [[라피아 전투]]에서 패하였지만 아나바시스 (동방 원정)으로 자신감을 얻은 후 마침내 5차 시리아 전쟁을 대승으로 이끌며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수복하였다. (기원전 195년) 그러나 5년 후 셀레우코스 군대는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대패하며 기세가 꺾였다. 이에 타르수스는 기원전 171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안티오코스 4세]]에게 진압되었고 이때 도시는 키드노스의 안티오키아 (Αντιόχεια του Κύδνου)로 개명되었는데 인근의 [[안티오키아]]와 혼동되어 자주 쓰이진 않았다. 로마의 역사가 [[스트라보]]에 의하면 헬레니즘 시대의 타르수스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와 [[아테네]]와 함께 지중해의 학문 중심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안티오코스 4세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는 내분을 겪으며 더욱 쇠퇴하였고 킬리키아는 기원전 83년 시리아 왕위를 얻은 [[아르메니아 왕국]]의 [[티그라네스 2세]]에 의해 정복되었다. 다만 그 지배는 확고하지 못하였고 킬리키아 해안은 해적들의 거점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