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르수스 (문단 편집) ==== 기독교와 동로마 시대 ==== [[파일:터키 바치 다리.jpg|width=850]] 베르단 강에 놓인 바츠 다리 (유스티니아누스 다리) 타르수스는 그리스도교의 [[사도 바울로]]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본래 사울이었던 그는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리스도교로 개종, 바울로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다른 소아시아 및 시리아 지방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소규모였으며 3세기가 되어서야 주교가 있었다. 4세기 초엽, 로마 제국의 강력한 탄압으로 여러 순교자들을 배출한 타르수스는 5세기 무렵에는 확고한 그리스도교 도시가 되었다. 여담으로 타르수스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주도한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리키니우스]]에게 패한 후 도시의 성벽 인근에 묻혔다. 메소포타미아 원정에서 전사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역시 그 반대편에 묻혔다. 6세기 무렵에도 타르수스는 여전히 소아시아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 황제 시대에 이사우리아[* 동로마가 게르만 용병 대신 군대를 모집한 아나톨리아 중남부의 민족들이 사는 곳]가 반란을 일으키자 타르수스는 그 진압군 사령부로 기능하였고 497년 반란 주동자들이 성문에 효수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 타르수스는 교각을 재건하는 등 정비 되었다. 다만 6세기 중반 타르수스는 청색당의 봉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7세기 초반에는 [[사산 제국]]에게 점령당하는 수난을 당하였으나 [[이라클리오스]] 황제가 수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