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쿠쇼쿠대학 (문단 편집) === [[서울대학교]]와의 관계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전신(前身)으로서 [[서울대학교]]의 여러 전신 교육기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타쿠쇼쿠대학의 전신인 대만협회전문학교가 1907년 [[구제전문학교|동양협회전문학교]][* 당시 [[구제전문학교]]. 후일 타쿠쇼쿠대학으로 개칭하나, 이름은 대학이지만 이 역시 구제전문학교. 다만, [[구제대학|동양협회대학]]은 [[구제대학]]이었고, 당시 구제전문학교 신분의 타쿠쇼쿠대학을 병설.]으로 개칭하며 [[경성부]]에 설립한 경성분교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이 동양협회전문학교 경성분교에는 본교 조선어과 3학년 학생들이 파견 수학하였으며, 1915년 동양협회식민전문학교 경성분교를 거쳐 1918년 본교가 척식대학([[구제전문학교]])으로 개칭할 때 동양협회 경성전문학교로 독립하였고 [[고등상업학교|고등상업과]]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1918년 12월 대학령이 공포되고 척식대학 역시 [[구제대학]] 승격을 위한 요건[* 학교 조직을 재단법인으로 할 것, 학교 기본재산으로 최저 50만엔을 공탁금으로 납부할 것, [[구제고등학교]]에 상응하는 [[대학예과]]를 설치할 것, 상당한 전임교원 숫자를 갖출 것, 교육•연구에 필요한 면적 요건의 교사와 도서관 등을 구비할 것 등 무척이나 가혹한 조건이었다.]을 갖추는 데 전력하게 되면서, 대학 인가 조건인 기본재산 50만 엔을 만들기 위해 대만의 제당회사 5곳에서[* 엔스이코제당 20만 엔, 동양제당 7.5만 엔, 대만제당 7.5만 엔, 대일본제당 7.5만 엔, 메이지제당 7.5만 엔 등] 기부를 받는 형편이라 신경써 줄 형편이 안 되었던 경성전문학교의 운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자 재정난에 빠진 경성전문학교를 1920년 [[조선총독부]]/[[조선은행]]/[[남만주철도주식회사]] 등 3자가 합자한 재단법인이에서 인수하여 사립 경성[[고등상업학교]]로 개편하면서 타쿠쇼쿠대학의 재단인 동양협회와 경성분교의 연은 끊어지게 되었다. 경성고등상업학교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은행과 만철 지분까지 완전히 인수하여 [[국립|관립]](官立) [[고등상업학교|경성고등상업학교]]가 되었고, 1944년에 [[구제전문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 해방 후에는 다시 분리되어 경성법학전문학교와 서울법정학교로 나뉘어진다.]와 [[구제전문학교|경성경제전문학교]]로 통폐합되었다가 광복 후 (미인가)경성경제대학을 거쳐 1946년 [[국대안|'''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의해 [[서울대학교]]에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상과대학]]으로 포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