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탈레스 (문단 편집) == 생애 및 일화 == 탈레스는 소아시아 서안 이오니아의 도시인 [[밀레투스]] 출신이다.[* [[밀레투스]]는 지금의 터키 남서부에 해당한다.] 아버지는 엑사뮈에스이고 어머니는 클레오불리네이며, 가문의 혈통은 포이니케[* 현재 그리스와 알바니아 사이에 위치.] 사람들로서 그 중 최고의 명문 집안이었다. 탈레스는 밀레투스를 창건한 네일레오스와 더불어 함께 와서 밀레투스의 시민권을 얻고, 그곳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얻어 마침내 [[7현인]] 중 한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정치활동에서 물러난 후에는 자연에 관한 연구에 종사했다. 탈레스는 정치적 판단력이 제법 좋았다고 한다.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페르시아 전쟁|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지원군을 파병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탈레스는 상황판단을 면밀히 한 뒤 그 요청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그 전쟁은 페르시아가 이기게 되는데, 페르시아는 지원군을 파병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서 밀레토스를 파괴하지 않았고, 결국 탈레스가 나라를 구한 셈이 된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탈레스가 심지어 [[크로이소스]]왕을 도와서 그의 군대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117)] 그리고 그의 경제 능력에 대한 일화도 전해진다. [[올리브]]가 풍작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는, 올리브기름 짜는 기계를 사용하는 철이 아닐 때 대량으로 헐값에 빌려두었다가 풍년이 들자 비싼 값에 재임대해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의 가난을 두고 철학은 아무 쓸모없다는 듯이 비난하자, 철학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단지 그들의 진지한 관심사가 아닐 뿐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직접 돈벌이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121] 그렇다고 그가 따로 학문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이집트에 가서 그곳의 신관들과 함께 지낸 것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한테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피라미드 높이를 그 그림자에 근거해서 측정했다고 한다. 한번은 밀레투스의 어부가 끌어올린 그물에 세발솥[* 의식용 삼발이 그릇. 보통 신에게 제사지낼 때 사용되었다.]이 있어 그것 때문에 다툼이 생겼는데, 결국 사람들은 다툼을 중재하고자 [[델포이#s-2.2|델포이로 사람을 보내 신탁]]을 구했다. 그 신탁은 "모든 사람 중에서 지혜가 으뜸가는 자"에게 그 세발솥을 주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세발솥을 탈레스에게 주었는데, 당시 탈레스가 얼마나 지혜로운 자로 인정받고 있는지 알려주는 일화라 할 수 있겠다. 하루는 별을 관찰하려고 노파의 시중을 받으며[* [[플라톤]]은 노파가 아니라 예쁜 하녀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p.121)] 집 밖으로 나갔다가 하늘만 쳐다보는 바람에 발을 헛디뎌 도랑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자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탈레스여, 당신은 발아래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늘에 있을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탈레스는 78세의 나이에 무리하게 운동 경기를 구경하다가 더위와 갈증, 그리고 이미 늙었기 때문에 쇠약해서 죽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비록 여기 이 무덤은 작으나 그 명성은 >하늘에 닿았으니, > >보라. 가장 지혜로운 자인 탈레스의 무덤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