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탕지야오 (문단 편집) === 몰락과 말년 === 1924년 운남군을 건국군으로 개편하고 7성 건국연군총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25년 3월 12일 [[쑨원]]이 사망하자 3월 18일에 난데없이 쑨원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자신을 국민당 대본영 부원수로 자칭하고 연성자치를 주장하였다. 이에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는 탕지야오 토벌을 선언하였다. 탕지야오는 [[양시민]], 유전환 등 국민당 산하의 군벌들과 결탁하고 천중밍과 연계하여 국민정부를 전복하려 했으나 양시민과 유전환은 군민재정 통일선언을 듣지 않고 [[1925년 객군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당했고 천중밍도 [[국민당의 1차 동정]]에 이은 [[국민당의 2차 동정]]으로 완전히 몰락했다. 탕지야오는 이에 직접 광저우 [[국민정부]]를 공격했지만 1924년에 국민당에 가입한 광서군벌 [[리쭝런]]과 [[바이충시]]의 공격으로 패배했다. 1925년 [[천중밍]]과 결탁하여 [[중국치공당|치공당]]을 조직하고 [[국민당의 1차 북벌]]에 대항하여 반공, 토적을 주장하며 [[우페이푸]]와의 동맹을 시도했지만 1927년 2월 6일, 휘하의 [[룽윈]], 서진수(四鎭守) 등이 정변을 일으켜 치공당을 해체하고 탕지야오를 실각시켰다. 탕지야오는 모든 실권을 빼앗기고 운남성정무위원회 총재로 좌천되었다가 몇달 만인 5월에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