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탕헤르 (문단 편집) == 역사 ==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틀라스]]의 딸 Tingis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셈어인 tigisis(항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시명은 [[베르베르어]]로 [[수로]]를 뜻한다. 기원전 7세기 경에 [[페니키아]]의 식민도시로 건립되었다. 이후 요충지답게 여러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다.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 제국]]의 기나긴 지배에 이어 중세 초기에는 [[반달 왕국]]과 [[동로마 제국]] 하에 있었고, 7세기부터는 [[우마이야 왕조|우마이야]], [[이드리시 왕조|이드리스]], [[후우마이야 왕조|후 우마이야]], [[무라비트 왕조|무라비트]], [[무와히드 왕조|무와히드]], [[마린 왕조]] 등 중세 이슬람 왕조들의 지배를 받았다. 1471년에 [[포르투갈]]의 영토가 된 이후 아프리카 진출의 근거지가 된 탕헤르는 [[이베리아 연합]] 시기를 거쳐 1661년, [[영국]]의 [[찰스 2세]]가 포르투갈 브라간사 왕가의 [[브라간사의 캐서린|캐서린]]과 결혼할 때에 [[지참금]]으로 인도의 [[뭄바이]]와 함께 영국령이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공격에도 견뎌내었지만 유지비는 견디지 못했다. 결국 1683년에 포기 명령이 내려졌고 황폐화된 채로 주둔군이 철수하며 빈 땅이 되었다. (1684년) 이후 탕헤르는 [[알라위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근대에 들어 [[독일]], [[스페인]], [[프랑스]]의 경쟁 끝에 [[국제연맹]]이 지정한 국제 도시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스페인이 다시 점령했으나, 1956년에 모로코가 독립하며 현재까지 [[모로코]]의 국제 항구 역할을 하고 있다. [[2012 여수 엑스포|2012년 엑스포]] 유치경쟁에서 [[대한민국]]의 [[전라남도]] [[여수시]]와 경합했다가 패배했다. 이 때 EU 소속 국가들이 탕헤르를 지원했으나 유치 경쟁에서 밀리면서 당시 '''[[유럽연합]] 전체를 [[대한민국]]이 홀로 이겼다'''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