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권도/역사 (문단 편집) === 명칭의 유래 === 1950년대 국내 무술-무도계에는 당수도·공수도·권법·화수도[* 무덕관 황기 관장이 당수도에서 개칭한 첫 무술명으로 화랑의 화를 따와서 화수도. 참고로 태권도 관련 최초의 서적인 '화수도교본'(조선문화교육출판사)이 1950년 나왔다.]·수박도·태권도라는 명칭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당시 [[가라테]]라는 명칭은 일본색이 강해 거부감을 주었기 때문에 가라테를 음독한 당수도, [[공수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권법]]이라고 애둘러 표현했다. 그밖에 황기는 전통무예인 [[수박(무술)|수박]]에서 영감을 얻어 수박도라 불렀고, [[최홍희]]는 1954년 무렵 전후해 [[태권도]]라는 명칭을 만들어 내어 불렀다.[* 최홍희는 태권도라는 명칭을 본인이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라 주장했지만, 오늘날엔 최홍희와 그의 부관 남태희가 함께 옥편 뒤지다 [[태껸]]과 비슷한 태권을 조합해 태권도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태껸은 1954년 최홍희의 부대를 시찰한 [[이승만]]이 변형 가라테 시범을 보고 태껸(택껸)으로 착각해 언급한 것이 영감을 주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1953년 제29보병사단장으로 부임했을 때 이미 태권도부대를 창설하고 경례구호도 태권으로 했다는 말도 있어서 조금 전후관계가 미묘하다.] 1950년대 후반 무도인들은 발전을 위해 통합체의 설립 필요성에 공감을 했으나, 통합체 설립에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명칭의 통일이었다. 어떤 명칭으로 통합되느냐 하는 문제는 각 관의 위신과 나아가 밥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이므로 쉽게 결론나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명칭 문제 등으로 통합단체 설립이 지지부진하던 상황 속에서 1959년 오도관 초대관장 최홍희가 군 장성이란 입지와 오도관, 청도관의 지원을 바탕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태권도라는 명칭을 밀어붙이며[* 사실 밀어붙였다기도 뭐한게, [[최홍희]]는 태권도란 명칭이 자신을 견제하고 있는 군 내부 반대파와 당수도와 공수도, 권법을 사용하고 있는 노병직, 윤쾌병, 이남석 등 민간도장 관장들의 반발로 무산될까 평소에도 걱정했다고 한다. 민족주의자였던 최홍희는 가라테 냄새가 나는 공수도 비슷한 류의 단어를 내켜하지 않았고, 반대로 자기들 무술에 자부심이 있던 상당수 민간 도장들은 기본이 가라테인데 이름만 태권으로 바꾸는게 도리어 꼼수다, 오/청도관이 쓰는 태권도 쓰기 싫다, 군 인사 최홍희가 왜 민간단체인 자기들 무술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반발하는 편이었다.]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했다. 1961년에는 대한태수도협회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지만[* WT는 이곳을 대한태권도협회의 시초로 본다.] 1965년 다시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되었다. 이때 이종우 등 기존 세력들은 태수도('태'권도+당'수'도)협회의 명칭을 고집했으나, 당시 5대관에서 영향력이 강하던 무덕관의 대변인 김영택이 수박도회와 태수도협회가 통합하는거니 양쪽 명칭보단 태권도로 명칭을 개정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최홍희를 도와준다.[* 60년대 중반에 나온 국내 중견 출판사의 생활대백과사전에는 태권도가 아닌 수박도로 나오고 있다. 물론 그 전반적 내용은 당시 국내 책들이 거의 그랬듯 일본 서적의 중역판이고 가라테 항목 대신에 넣은 것이었지만 그 때까지도 태권도 명칭이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족으로, 최홍희는 태권도의 '태'자는 발을 의미하며 태껸과 연관짓기 위해 찾은 "밟을 태(跆)"를 붙였다고 하는데, 정작 태권도에는 발로 밟는 기술은 없다.(...) 발차기를 한다는 의미라면 "다리 각脚"을 썼어야 올바른 한자 조합이 된다. --각권도-- 이에 대한 유력한 가설로, [[중국권법]]에 관한 고사성어 중 북파권법은 발차기가, 남권은 주먹이 뛰어나다는 뜻의 '남권북퇴(南拳北腿)'가 와전된 '남권북태(南拳北跆)'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이 남권북태는 아직도 종종 쓰이는 와전 표현이다. 참고로 남권과 북태의 순서를 바꾸면 '태권'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또한 태권도의 모체가 된 5대관 중 YMCA권법부에선 특이하게 [[진각]]을 가르쳤는데, 이 무술이 무엇이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팔극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진각은 바닥을 '밟는' 자세이고, 최홍희가 거기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태권도는 높이 도약하는 자세가 많은데 도약을 하려면 바닥을 강하고 빠르게 밟아야(?) 하고, 그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을까 추정할 뿐이다. 참고로 최홍희가 '밟을 태(跆)' 자를 썼을 땐 차는 동작뿐만 아니라 뛰어오르는 동작도 의미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두번째 글자는 가라테를 음독한 공수도 또는 당수도에서 사용되는 손 '수(手)'자를 고려했다가 그와 비슷한 의미인 주먹 '권(拳)'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초기 태권도의 5대관에서 사용한 세 가지 명칭이 '공수도', '당수도' 그리고 '권법'이었다. 또 당시 쿵푸를 비롯한 많은 중국 무술들이 '권법'이라 불렸다. 세번째 글자인 도(道)는 태권도가 일본 무술 작명의 영향을 받은 현대 창작 무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무예에 도(道)를 붙이는 건 유도처럼 일본식 조어로 전통적인 한국식 명명법은 아니다. 다만 유도부터가 유술의 무술적 개념을 넘어 철학, 정신적 수양까지 연마하라는 의미에서 도를 붙인거라 태권도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