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권도/역사 (문단 편집) ==== 태권도가 가라테에서 파생된 무술인 이유 ==== 전반적으로 태권도 동작의 기본 원리, 특히나 [[세계태권도연맹|WT]] 계열의 태권도의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은 가라테와 굉장히 흡사하다. 도복도 가라테 방식을 약간 변형한 것이고, 정권지르기나 얼굴, 몸통, 아래막기와 같은 기본 막기들도 전부 가라테에서 건너온 것이다. 또한 품새는 일본 쇼토칸 가라테의 가타(形)를 재조립한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태극 품새 같은 경우 일본 본토에 가라테를 보급하며 쇼토칸(송도관)을 창시한 후나코시 기친이 저연령층을 위해 만든 태극 카타와 이름조차 똑같다. 이에 대해서 초창기 태권도인들인 노병직, 최홍희, 이종우 등은 가라테가 태권도에 미친 영향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타 가라테가 태권도에 영향을 준 바에 대해서는 [[가라테와 태권도의 관련성]] 항목도 참고할 것. 사실 태권도의 모체가 된 기간도장 관장들은 다양한 무술을 연마했다. 무도관의 황기는 [[중국권법|중국 권법]]을, 조선 연무관의 전상섭은 고주류(剛柔流) 공수도를, YMCA 권법부의 윤병인과 윤쾌병(윤희병)은 슈도칸 공수도와 만주 권법을 배웠다. 하지만 5대 관이 서로 교류하면서 이들의 무술은 '''한 가지 스타일로 수렴'''해 갔는데, 그 스타일이란 바로 '''쇼토칸 가라테'''였다. 쇼토칸은 당시 일본 본토에서 가장 세력이 큰 가라테 유파였기 때문에 당시 무도가들에게는 그들의 시스템이 무척 선진적인 것으로 보였을 법도 하다. 물론 태권도에는 중국 무술의 특징도 남아 있다. 중국 권법의 투로를 계승한 품새나, 중국 권법의 기본 자세들을 계승한 주춤서기, 앞굽이, 학다리 서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태권도가 '''중국 무술을 계승한 가라테를 계승한 무술'''이어서지, 중국 무술에서 곧장 태권도로 유입된 것이 아니다. 태권도의 기원을 역추적하다 보면 가라테→오키나와 테→중국 남권에 닿게 된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기원은 기원일 뿐이라서 중국 무술을 직접 계승한 것은 아니다. [[분류:태권도]][[분류:스포츠 역사]][[분류:대한민국의 역사왜곡]]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