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사자 (문단 편집) === 예장을 정찰하다 === 197년 [[착융]]의 배신 등으로 병에 걸려 오늘 내일하던 [[유요]]가 죽자 손책은 예장에 있던 유요의 수하 1만 명을 탐내기 시작한다. 손책은 태사자가 예장의 [[화흠]]과 같은 주 출신이기에 그를 불러 예장과 여릉, 파양을 구슬리라고 보낸다. >손책이 태사자에게 말했다. "이전에 유목(유요)이 지난번 내가 원씨([[원술]])를 위해 여강을 공격했다고 책망한 것은, 그 뜻이 자못 굽어진 것이고, 이치상 용서하기에도 족하지 않소. 어째서겠소? 선군([[손견]]) 수하의 병사 수천여 명은 모두다 원공로(원술)에게 있었소. 내가 대업을 세우고자 뜻을 두었기에 부득불 공로에게 뜻을 굽혀 옛 병사들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두 차례나 가서야 겨우 1천여 명을 얻었을 뿐이오. 연거푸 나더러 여강을 공격하라는 영을 내리니, 그 때의 사세는 그렇기 행하지 않을 수 없었소. 다만 그 후에 신하의 절개를 따르지 않고, 자포자기하여 참란된 일을 하니, 간언해도 따르지 않았소. 장부가 의로 사귐에 진실로 큰 이유가 있으며, 헤어지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원공로와 사귀었다가 관계를 끊은 본말은 이와 같소. 지금 유요가 죽었는데, 그 생전에 그와 함께 같이 변론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소. 지금 (유요의) 어린 아들이 예장에 있는데, 화자어([[화흠]])가 어떻게 대우하는지, 옛 부곡이 (유요의 아들에게)다시 의지하고 따를지 어떨지 모르겠소. 경은 같은 주의 사람이고, 옛날에 또한 그를 따른 적이 있으니, 가서 그 아들이 어떤지 살펴 보고, 아울러 그 부곡들에게 내 뜻을 전해주겠소? 부곡들 중 기꺼이 오겠다는 자는 함께 데려 오고, 오기 싫다는 자는 또한 안정시키고 위로하시오. 아울러 자어가 예장에서 다스리는 방규가 어떤지 살피고, 여릉과 파양 백성들이 새로 귀부해 올지도 살피시오. 경의 수하의 병사는, 얼마나 많이 거느릴지는 뜻대도 하시오." > >태사자가 대답했다. "저에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데, 장께서는 제환공이나 진문공 같은 도량으로 지나치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옛사람들은 죽음으로써 생전에 보답하고, 절개를 지켜 다하며, 자신이 죽은 연후에 끝났습니다. 지금 아울러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있는데 병사들은 의당 많을 필요는 없고, 수십인만 거느려도 갔다가 돌아오는데는 족합니다." >---- >강표전 주위 사람들은 태사자가 배반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손책은 태사자를 믿었고 그 믿음대로 태사자는 돌아왔다. 태사자의 보고에 따라서 작전을 짜 행동하니 결국 손책은 얼마 안가 예장을 평정한다. >처음 손책이 태사자를 파견할 때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 태사자를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떤 자가 말하기를 화흠과 같은 주 출신이라 그쪽에 남아 계책을 꾸밀까 두렵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자가 의심하기를 서쪽으로 [[황조#s-3]]에 의탁하거나 길을 빌려 북쪽으로 갈 것이라는 등 태사자를 파견하는 것은 실책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 >손책이 말했다. "제군의 말은 모두 틀렸으며, 나의 결단은 자세하다. 태사자의가 비록 용기있고 담렬이 있지만, 그러나 제멋대로 구는 인물은 아니오. 그 마음에 선비의 책모가 있고, 뜻은 도의에 지나고, 약속을 귀중하게 여기니, 한번 뜻으로 허락한 지기는 죽어도 서로 배반치 않으니, 제군은 다시는 걱정하지 마시오." > >태사자가 예장으로부터 돌아오니 비로소 의논하던 사람들이 승복했다. 태사자가 손책에게 보고했다. "화자어(화흠)는 훌륭한 덕을 가진 인물이지만, 주략(籌略)의 재주는 없고, 다른 방규도 없이 스스로 지킬 뿐입니다. 또 단양의 [[동지(삼국지)|동지]]는 여릉에서 제멋대로 하고 있으며, 조서를 받아 태수가 되었다고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파양의 백성들 중 우두머리들이 따로 [[종부]]를 세워, 험한 곳에 병사를 두여 경계를 지키고 있는데, 화자어가 파견한 장리들은 받지 않으며 말하길 '우리들이 따로 군을 세운 것은 모름지기 한 조정에서 보낸 진짜 태수를 기다려 마땅이 이를 영접할 뿐이다.'라 합니다. 자어는 능히 여릉과 파양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인근 해혼에 있는 상료에 보루를 쌓아, 5~6천여 가구를 서로 모아 종오를 지어, 다만 군에 세금을 들이고 있을 뿐이며, 한 사람도 내거나 징발하여 얻지 못하니, 자어 또한 이들을 지켜볼 따름입니다." > >손책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고 겸병(兼幷)할 뜻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예장을 평정했다. >---- >강표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