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왕 (문단 편집) === 신라 군주의 칭호 === 신라에서도 6세기부터 태왕 칭호를 사용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울주 천전리 각석]]에서 [[법흥왕|모즉지태왕(另卽智太王), 성법흥태왕(聖法興太王)]]이라는 기록이 있고[* 천전리 각석보다 15년 전에 만든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는 법흥왕을 [[모즉지 매금왕]](牟卽智 寐錦王)으로 되어있다. 이 시기 신라에서 태왕과 매금왕([[마립간]]) 두 호칭을 어느 정도 혼용했거나, 짧은 시기 사이에 호칭이 바뀔 만한 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 순수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에는 [[진흥왕|진흥태왕(眞興太王)]], 김천 갈항사 석탑기의 [[원성왕|경신태왕(敬信太王)]] 등의 기록이 있다. 대체로 신라의 태왕 칭호 사용은 좀 더 앞 시대에 태왕 칭호를 사용했던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한다. 신라는 고구려의 왕호를 사용하며 동시에 독자적인 [[연호]]를 제정하는 것을 통해서 과거 고구려의 반속국[* 광개토~장수왕 초기에 고구려가 신라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인 뒤 가야와 왜군을 격퇴하고 신라를 속국화했다. 이후 신라가 백제와의 [[나제동맹]]을 굳히고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적대하면서 벗어나게 된다.]이었던 신세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고구려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듯이 고구려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자국이 천하의 중심에 있음을 선포하려 했다. 또한 [[진흥왕]]은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불교 신들의 이름을 따서 짓고, [[진평왕]]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을 사용하는 등 고구려[* [[임금]]을 '태왕'이라 칭하는 것]와 중국[* 황제만 정할 수 있는 '연호'를 제정한 것]의 천하관과 불교를 이용하여 왕권 강화로 사용하였다. [[마운령비]]나 [[창녕 척경비]]에서는 태왕 말고도 [[제왕]](帝王)이나 [[짐]](朕) 같은 용어도 사용하고 있어서 신라가 6세기부터 [[외왕내제|천자국의 체제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