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조(오월) (문단 편집) === 오월의 황제 === 이후 동창 및 여러 반란을 진압한 후 징집을 중단했으나 상황은 사방이 적이였고 국경, 신주까지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그 적들중 한명이자 라이벌은 바로 [[양행밀]]인데 양행밀과 전류의 관계는 우호적이기도 하고 적대적이기도 했다. 둘의 대립은 약 30년간 지속되었다. 양행밀이 회남절도사 손유(孫儒)와 안인의(安仁義)를 공격할 때 양행밀에게 지원군을 보내주고 서로 통혼했지만 양행밀이 동창을 지원하자 그때부터 적대 관계가 되었고 [[https://zh.wikipedia.org/wiki/%E7%8B%BC%E5%B1%B1%E6%B1%9F%E4%B9%8B%E6%88%98|낭산강전투]]를 계기로 둘의 대립관계는 끝이 난다. 저장 지역이 평온을 찾은 것이다. 전류는 자신의 세력권이 평온을 맞자 사치스러워졌고 임안에 호화로운 궁궐을 지었으며 외출할 땐 천자처럼 수레나 말, 수많은 부하들을 동원하며 다녔는데 그 모습을 본 아버지 전관이 그를 꾸짖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농업]]과 [[고기]]를 잡던 백성 집안이다. 이때까지 너 외엔 벼슬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기에 네가 지금 높은 벼슬자리에 있어도 너를 도와줄 사람이 적고 주변에는 모두 너와 원수진 적들뿐이다. 그런데도 너는 만족을 모르고 남과 땅, 성을 다투고 있으니 우리 전씨 가문이 이로 인하여 큰 재앙을 받을까 봐 걱정된다. 아버지의 말을 계기로 자신을 되돌아보게된 전류는 매사에 신중해졌고 사치행각을 그만두었다. 잠잘 때도 한쪽이 둥글어 잠에 깊이 들면 머리가 베개에서 떨어져 깨어날 수밖에 없는 일명 경침(警枕)을 베고 자는 등 경각심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처소를 순찰하는 병사 한 명이 담 아래서 졸자 탄환으로 정신을 깨우치게 하는 등 매사에 신중을 기울였다. 전류는 904년 오왕(吳王), 이후 [[후량]]의 [[주전충]]에 의해 오월왕(吳越王)에 봉해졌고 정식으로 907년 [[오월(오대십국시대)|오월]]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왕의 아래인 [[절도사]]의 부서를 왕국의 조정처럼 바꿨고 국왕의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승상 등의 관직을 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