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조(요) (문단 편집) == 사후 == 야율아보기가 붕어한 직후 쇼킹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야율아보기의 장례식 도중 황후였던 순흠황후 술률평(述律平)[* 성이 술률씨. [[위구르]] 계통의 성씨이다. 요 태종을 옹립하며 황실의 어른이 되었지만 훗날 자신이 몰아낸 장남 야율돌욕의 아들 세종에게 패배한 후 남편 야율아보기의 능묘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한다. 결국 황족인 야율옥질(耶律屋質)의 중재로 세종은 화를 거두었고 이후 자신이 황제로 세우려던 3남 야율이호(耶律李胡)와 함께 조주로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953년 씁쓸히 생을 마감했다.]이 야율아보기가 유언으로 신하들을 [[순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신하들은 반발했지만 요나라 풍습상 순장은 해야 했기에 명분이 필요했는데 이때 한족 출신이던 [[조사온]](趙思溫)이 술률평이 야율아보기와 가장 가까웠으니 황후 먼저 순장하자고 주장했고, 이에 술률평은 [[요태종|아들]]이 어려서 본인이 [[수렴청정]]해야 하므로 아직 자기가 죽을 순 없고 대신 팔 하나를 순장하겠다며 진짜로 자기 팔을 잘랐다. 결국 신하들은 술률평의 팔 하나와 같이 순장당해 버렸고[*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른 신하들이 먼저 순장당한 뒤 조사온이 이렇게 말했고 그래서 결국 목숨을 건졌다고 나온다. 권중달 역 《자치통감》에서도 조사온은 살았다고 나온다.] 술률평은 '단완태후'(斷腕太后, 팔을 끊어버린 태후)라는 별명이 붙는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몽골족의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한족 국가였던 [[명나라]]에도 순장이 잔존해서 명나라에서도 순장 관련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령 황후가 순장 대상이 되어 신하들이 순장을 요구하자 황후가 "그럼 니들이 먼저 순장당해봐라"라고 하고 신하들은 다 같이 데꿀멍해버려 결국 순장당하지 않았다는 등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