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종(당) (문단 편집) == 개요 == [[당나라]]의 제2대 [[황제]]이자 [[돌궐 제국]](동돌궐)의 제14대 [[가한]]. 휘는 세민(世民).[* '''제세안민'''(濟世安民)으로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世와 民이 모두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상용 한자였기에 많은 [[피휘]]가 걸리게 되었으며 피휘 최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군주의 이름조차 직접 쓸 수 없어서 이세민은 비슷한 뜻과 모양의 '이대씨'(李代氏)로 표기되었다. 또 [[잉어]]를 '리'(鯉)라고 읽으니 당 황실의 성씨와 겹친다며 먹지도 않게 되었다. 이렇게 신분이 격상된 잉어는 이후로 '붉은 비늘 선생'(赤鮮君)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자]]의 성씨가 이씨니 그를 갑자기 조상으로 모셔 추존까지 하고 태상노군이라 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사실 수백 년 전에 살던 노자가 이연의 조상이라는 물적 증거는 같은 성씨 외에 전혀 없다.] [[양제(수)|수양제]] 이후 혼란스럽던 정세를 정리하고 중원을 평정했으며 여러 인사들을 포용한 정치를 통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태평성대인 '''[[정관지치]]'''를 이루었다. [[동돌궐]] 등 주변국을 공격해 외치에서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반대로 업적의 이면에는 적지 않은 오점이 남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형제인 [[이건성]]과 [[이원길]]을 죽이고 아버지 [[고조(당)|이연]]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현무문의 변]]'''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권력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록에서 형제들이나 아버지의 공을 가능한 한 축소하고 자신의 업적은 과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집권할 때까지 학살을 적지 않게 저질렀으며 말년으로 갈수록 초심을 잃고 해이해져 충신들의 간언을 귀담아듣지 않아 후계자 문제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패퇴한 황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신성(성)|신성]], 건안성, [[안시성]] 등에서 패퇴해 요동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 때문에 태종 말년에 전쟁 후유증으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그는 [[고구려-당 전쟁|여당전쟁]] 패배 뒤 자신이 굴욕을 겪었던 것을 은폐해버렸고 '''《[[진서]]》'''를 비롯한 사서들을 자기 입맛대로 편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