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태평천국 (문단 편집) === 서양 열강 === 상당히 특이한 외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태평천국 스스로는 [[상하이]] 등의 조계에 주둔하는 열강을 우호적으로 여겼다. 이유는 당연히도 그들이 [[기독교]]를 믿기 때문이었으며 서양 형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태평천국에 가담하는 서양인들도 드물지만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린들리였다. 처음 태평천국은 서양으로 부터의 사절단을 받아들였는데 대표적인 일이 1853년 4월, 영국 공사 본햄이 [[난징]]에 방문하여 [[석달개]], [[위창휘]]와 접견한 일이었다. 중국 최초의 명함 전달이 이때라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서양이 중립적으로 태평천국과 청나라 모두에게 무기를 팔았지만 1860년에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맺은 [[베이징 조약]] 이후는 태도가 변했다. 우선 태평천국이 주장했던 '홍수전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예수는 그의 형이다.'라는 괴상한 기독교 교리는 범상한(?) 이단 수준조차 한참 벗어난 것으로, 결코 용납될 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이런 교리를 접한 영국인들은 "만약 로마 교황이 홍수전을 다스릴 권한이 있었다면 그를 화형시켜 버렸을 것이다."라고 부정적으로 여겼다. 또 태평천국은 [[아편]] 사용을 금지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만약 태평천국이 득세하여 대등한 외교를 바랄 경우 경우 열강이 기존 [[청나라]]와 체결한 [[톈진 조약]], [[베이징 조약]] 등의 사항이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당연히 계산기를 두들겨 본 열강들은 태평천국을 갈수록 적대하게 됐다. 그리하여 태평천국 수뇌부 2기인 [[이수성(태평천국)|이수성]]이 주도권을 잡을 무렵에는 [[항저우]], [[상하이]] 공략에 열강의 용병단이 이끌던 양창대에 물을 먹은 후라 당연히 서양도 적대하게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