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터미널(영화) (문단 편집) == 모티브 == [[파일:external/gorod.tomsk.ru/8494667_26974b_1.jpg]] 이 작품은 1945년생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 مهران کریمی ناصری)가 샤를 드골 공항에서 겪었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나세리는 [[1973년]] 9월 [[유고슬라비아]]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3년짜리 유학을 다녀온 후 귀국했고, [[1977년]]에 고국에서 [[팔라비 왕조]] 반대 시위를 벌여 비밀경찰에게 고문 당한 후 이란으로부터 추방당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그는 [[동독]],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망명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고하며, 이에따라 [[유엔|UN]]에게 [[난민]] 지위를 얻어 영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고한다. 특히 나세리는 자신의 친모는 아버지와 불륜을 한 영국인 간호사였다는 사실을 뒤늗게 알고 친모를 찾고자 영국으로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5년 <가디언>지의 보도에서 고문을 받고 추방당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나세리의 출생의 비밀은 거짓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으나 [[RER]] 기차역에서 여권과 서류가 든 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프랑스로 되돌려졌다. 오갈 데 없던 그는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에 눌러앉아 [[1988년]] 8월 26일부터 [[2006년]] 7월까지 공항에서 생활했다. [[1995년]] [[벨기에]] 당국이 그가 사회복지사의 관리 아래 벨기에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가했지만, 그는 당초 계획이었던 영국행을 고수하며 벨기에 입국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증빙서류가 없었기에 벨기에로 돌아가고 싶어도 프랑스에서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는 상황. [[1999년]]에는 [[프랑스]] 측이 난민용 여권을 교부하며 정식 이민자로 받아주었지만 이미 십수 년 간의 공항 생활이 익숙해져버린 나세리는 공항을 벗어나길 거부했고, 이에 따라 거절할 명분으로 난 귀족인 알프레드 헤르만 경이며 이란인이 아니라고 미친 척하기도 했다.[* 실제 망상증이 있다고하기엔 공항에서 이로인해 큰 피해를 준적이 없어서, 그냥 공항에서 벗어나지 않기위해 망상증인척 가장한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물론 기회가 있어도 공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것이지만.] 이후 나세리를 도와준 변호사가 문제의 증빙서류를 찾은 후에도 자신의 문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공항에 계속 머물렀다. 나세리는 매일 아침 5시 첫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공항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매우 당당하게 행동하고 구걸이라든지 행패를 부리지 않았으며 공항 측에 피해가 갈 일을 일절 하지 않았다. 덕분에 공항 직원들에게 호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쫓겨나지 않고 18년씩이나 살 수 있었겠지만... 주변을 반드시 청소하고 자신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했으며 직원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했기에 직원들은 나세리의 옷을 무상으로 세탁하거나 듣고 싶은 음악이나 방송을 보게 해 준다든지, 소파나 의자를 제공하고 나세리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그는 주요 일과로 신문을 보았고, [[경제학]]을 공부하거나 일기를 썼는데 이때 쓴 [[일기]]를 바탕으로 이라는 이름의 자서전을 2004년 영국, 독일, 폴란드, 일본, 중국 등에서 출간했다. 공항 사람들은 이전부터 나세리에게 알프레드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나세리는 이 새로운 이름을 낯설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공항에서 살면서 책도 내서 알아보는 사람에게 사인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이 영화가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이기 때문에 제작사인 드림웍스로부터 30만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번 돈을 저금도 했지만 공항 직원들에게 후하게 한턱 내기도 하며 꽤 기분파같은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 2006년 7월 병원에 입원, 기나긴 공항 생활을 마감했고, 2007년부터는 한 프랑스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파리(프랑스)|파리]]에서 거주했지만, 결국 수 십년의 공항 생활로 인해 바깥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 여러 보호소나, 호스텔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나세리가 바깥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직업을 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드림웍스로부터 30만 달러의 거금을 받은데다가, 주로 보호소나 호스텔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큰 돈이 나갈 일은 많지 않아 고정적인 직업을 가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망 당시 소지품으로 약 수 천유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결국 2022년에 파리 공항으로 돌아와 몇 주간 공항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가, 2022년 11월 12일(현지 시간)에 향년 77세의 나이로 파리 공항에서 세상을 떠났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77/0005176415?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