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러 (문단 편집) ==== 저항권의 상실 ==== 무차별적인 테러의 결과로, 인질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테러리스트와는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는 일방통행주의가 강력한 명분을 얻게 되어 국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세계 각국에서 테러리스트는 그 목적과 무관하게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테러로는 메시지 어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점 이전까지 테러는 일련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략적/전술적 목표들을 선택하여 공격하였다. [* 물론 [[묻지마 테러]]는 이 시점에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테러의 주류는 아니었다. 묻지마 테러 및 학살 행각을 주로 일삼았던 것은 당시 주류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윽 [[이스라엘]] [[시온주의]] 계열 테러범들이었다.] 그러한 공격을 통하여 강대국들의 협상을 이끌어 내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의 주의주장을 하는 정치적 투쟁의 일환이었다. 그러한 정치적 목적성을 지닌 만큼 이 시점까지의 테러는 자행하는 파괴의 잔혹성/규모와 주장하고자 하는 대의의 설득력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네놈들과는 이제 대화 안 한다. 그냥 없애버리겠다"라는 식으로 방침이 정해진 이후의 결과는...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의 가장 큰 패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뜻 듣기에는, [[테러와의 전쟁]]은 "불법적폭력을 행사하며 강짜부리지 말고 제대로 절차를 거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주의 같다. 하지만 애초에 정상적인 채널, 합법적 창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게 무장투쟁이라는 현실에 많이 동떨어져있기도 하다. 이 논리를 일제강점기에 그대로 적용하면 [[독립운동가]]들은 무장저항 같은 것을 하지 말고 [[조선총독부]] 등을 통해 일본에 항의서한 및 독립요구라도 전달을 했어야 한다. 이상적인 사회에서야 그 의견의 타당성을 고려해 심사숙고한 끝에 [[조선]]을 독립시켜주겠지만 [[제암리 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과 같다. 민주주의 사상의 본연은 근대 시민혁명의 목적인 '''압제자의 타도'''로부터 출발했기에, 이미 주류 사상이 되어 세계에 보편화 된 이후에도 이 '저항'의 개념은 권력자들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수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원론적이나마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폭력사태로 귀결되는 집회와 시위 같은 '실력행사'에 대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래도 수용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저항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했거나 하여 정상적이고 절차적인 방법으로는 그 부조리를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현실에 저항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80년대 이전에는 그렇게 테러를 바라보았고, 예를 들어 격화되고 잔혹화되는 경향 속에서도 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선봉에 서있던 [[IRA]] 및 [[신 페인]]은 영국 내에서도 지지 여론이 있었을 정도이다. 평화와 인권의 업적에 대해 찬양받는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또한 평화운동에 무차별 총격으로 대응하자 폭력투쟁과 테러를 시작했고, 미국 민권운동에 있어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쌍벽을 이루고 있던 [[말콤 엑스]] 또한 각종시위 등에 있어서 '적극적 저항' 및 '전투적 저항'을 극도로 옹호하였다. 바꿔 말하면,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있어서 [[저항권]]의 개념은 눈의 가시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라고 할지라도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 이중적인 태도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추악한 CIA 공작, 쿠바에 대한 끝없는 개입, 친미정권 유지를 위한 중남미 각국에 대한 끝없는 내정간섭,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같은 독재정권 옹호, [[파나마 침공]] 등 당시 미국의 행보는 심각했다. 이는 수많은 지역에서 반미 무장투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과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는 이상 결국 무장저항은 미국에 대한 테러 투쟁의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와 함께 미국에 대한 여론 또한 악화되면서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낸 회심의 한 수가 바로 [[테러와의 전쟁]]이었던 것. 결국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의 주동세력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저항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측에서 명분을 빼았고 '''"테러는 무조건 다 나쁜 것. 어떤 예외도 없음"'''이라는 일방적 규정을 세계화 하는 여론전, 미디어전의 특성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권 자체에 대한 부정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후 미국뿐만이 아니라 타국들에서도 자신들의 억압, 탄압 행위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테러 척결,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을 삼기 시작한 것. 그 예로 [[중국]]에서 홍콩이나 위구르 족에게 일삼는 압제에 대해 '테러리즘 척결'을 빌미로 삼는가 하면, 터키에서 [[쿠르드족]] 탄압에서 테러 단체 진압을 명분으로 거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을 테러 원천 차단의 명분으로 탄압하고 있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테러와의 전쟁을 거론하며 자신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을 전부 싸잡아 공격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