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르시오 (문단 편집) == 테르시오의 유래 == 테르시오는 15세기 말~16세기 초 스페인의 장군이었던 [[곤살로 데 코르도바]]가 대령 (coronel) 계급의 연대장 한 사람 밑에 다수의 장창병, 총병대, 검방 보병을 하나의 연대로 묶어 각 부대가 자체적으로 대기병, 사격전, 대보병 백병전, 등 다양한 형태의 전투를 모두 유기적으로 수행 할 수 있도록 군 편제를 새로 짠 것을 대령 연대장이 지휘한다고 하여 코로넬리아 (coronelía)라고 이름 붙힌 것에서 기원한다. 스페인 연합왕국 성립 이전에도 프랑스와 여러번 전쟁을 해왔었고 프랑스 영토를 얻기도하고 잃기도 하는 등 스페인군(구 [[아라곤 왕국]]군)은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대체로 일진일퇴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그동안 검병과 투창기병들이 주축이 되었던 스페인군[* 그간 수백년 동안 싸워온 상대가 경무장 위주인 이슬람군이었기에 스페인군도 그에 맞추어 방어력보다는 임야와 산지를 방패막 삼아 게릴라 파괴전을 벌이는 등 기동성을 중시하고 있었고, 성문을 따고 진입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창보다 검과 방패가 선호되고 있었다.]을 이끌고 [[이탈리아 전쟁]]에 참여했다가 중무장한 병력를 가진 [[프랑스군]]에게 밀려 후퇴해 패배한 뒤,[* 사실 스페인군의 무장 때문이라기 보다는 스페인군의 투창기병이 시전하는 치고빠지기를 도주로 오해한 나폴리왕국군 동맹군이 뒤따라 도주해버린 탓. 그런데 당시 나폴리왕국군은 정규군이라기보다 의용병(당시 거의 전 국토가 프랑스군에게 넘어가고 나폴리 왕 페르디난드 2세가 스페인으로 망명. 스페인군의 지원을 받아 돌아왔는데, 왕께서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민병대)이었던 관계로,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강력한 기병을 보유한 프랑스 군 등 서유럽의 군대를 상대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한 끝에 창안한 것이었다. 군사적 혁신으로 테르시오 전술을 창안하고나서 16~17세기 초까지 유럽최강 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물론 테르시오 창안 이전, 굴곡진 산지가 많은 [[이베리아 반도]] 지형 특성상 장거리 기동성을 극대화하고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에 의존하던 경무장 게릴라군 시절에도 스페인이 약한군대는 결코 아니였다. 당시 유럽은 상호 기독교 국가들간 관계와는 달리, 종교가 다른 이슬람 지역에 대한 선전포고 없는 [[크루세이더]] 활동은 합법이였고, 비공식적 공격인 지속적인 기습 게릴라전을 통해 이슬람 지역을 약탈, 파괴, 황폐화 시키는 행위가 보편화된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같은 행위를 이슬람 제국도 이전까지 해왔다. 특히 동로마 제국은 아나톨리아 반도를 상실하기 전까지 타우러스 산맥을 경계로 벌어지는 유격전에서 민간인 학살, 납치, 노예화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중갑을 착용한 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였고 타 국가에 비해 적긴 했지만 기병부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였다. 스페인 창립의 5개의 구성국 중 하나인 [[아라곤 왕국]]은 페드로 3세 때 교황군, 나폴리, 프랑스 연합군을 모조리 격파해버린 전과도 낸 적이 있다. 다만, 이때도 테르시오는 아니여서 병사 개개인의 역량과 기동성에 의존한 전술을 사용했던 것은 사실이였다. 수백년의 [[레콩키스타]] 기간동안 이베리아 반도라는 지형에서 이슬람에 맞서 기동성을 활용한 게릴라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스페인군도 자연히 경장화 되었던 것. 또한 스페인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말을 키울수 있는 목초지가 부족해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사 계급의 발전이 미약했다. 투창기병들 또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전체 군병력에서 비중이 낮았으며, 애초에 히네테 (jinetes) 라고 불린 이 투창 경기병들은 위에 서술 된 게릴라 강습전, 추격 섬멸전, 물자 약탈 등의 비정규전에 특화 된 병과지 서유럽의 기사마냥 중무장 시키고 돌격하는 중기병이 아니었다. 저들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열심히 이슬람 침략자들을 물리친 나라라고 자랑 하는거 좋아하는 것 치고 스페인은 무어인들에게 문화, 예술, 정치, 사회, 군사 등 다방면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워 왔는데, 승마술도 스페인 승마술은 지금까지도 덩치 큰 대형마들이 랜스 차징에 특화 된 중무장 기사들을 태우고 다니는 일반적인 서유럽식 승마술이 아니라 덩치는 작으나 몹시 유연하고 재빠르며, 한 순간에 폭발적인 속도는 못 내지만 오랫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아랍식 승마술에서 배워왔다. 덩치크고 대신 관리 문제로 오래 달리기 힘든 큰 말 중심으로 야전에서 정면돌격, 충돌의 주축이 아니라, 오히려 어찌보면 동유럽, 유라시아 스텝의 기마민족들과 비슷하게 보다 작고 지구력이 뛰어난 말로 일상적인 장거리 전략적 이동에 기병을 쓰며 유격전을 벌이는데 특화된 스페인의 기마술 전통은 유럽 본토의 전장보다도 더욱 비정규전 중심이 될수 밖에 없는 신대륙에서 오히려 더 유명해지며 먼 훗날 [[미국]]의 [[카우보이]]가 된 중남미 일대의 말타고 무장한 목동, 바케로 (vaquero) 전통을 낳았다. 따라서 스페인 본토에서 대규모 야전의 주축은 어쩔 수 없이 보병이 전력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귀족계급에서도 대규모 기사단이 없으니 보병으로 복무하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산티아고 기사단]]을 비롯한 중세의 레콩키스타의 주축이었던 성직 기사단들은 독립적인 군사집단으로 힘을 발휘한건 1492년 그라나다 정복을 끝으로 그 이후론 아예 통치권, 단장직이 통째로 스페인 왕실에게 넘어가며 자체적인 기마 군사 집단이 아니라 나라에 공을 많이 쌓은 귀족들에게 수여하는 명예 친목회로 바뀐 상황이었다. 이는 보병이 중심이 되는 다른 이탈리아, 스위스, 스코틀랜드도 마찬가지였던 반면, 나라 전체가 말들 뛰어 놀라고 있는 대평원인 폴란드 같은 나라들은 대조적으로 17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계 국가에게서 체계적인 보병 운용 전술을 배워 오기 전 까지 비단 '''귀족 평민 상관 없이''' 전쟁은 당연히 말 위에서 하고, 보병은 뒤에서 대포나 만지는 아주 제한적인 역할이나 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인식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이 프랑스와 전쟁을 할때 스페인군의 중장기병은 거의 대부분 독일의 기병대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14세기 [[세르비아 제국]]의 기병대도 마찬가지여서, 세르비아 제국의 기병대는 대부분 독일인 출신이었다. 또한 16세기 프랑스에서도 독일인 출신으로 구성된 중장기병들이 대거 복무했는데, 중세 유럽에서 그만큼 독일인들이 중장기병으로 유명했다는 증거인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