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텔아비브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이스라엘의 세계유산)] ||<-3>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 이름 || [[한국어]] || 텔-아비브 화이트시티[* - 모더니즘 운동] || || [[영어]] || White City of Tel-Aviv[* – the Modern Movement] || || [[아랍어]] || مدينة تل أبيب البيضاء[* – الحركة العصرية] || || [[프랑스어]] || Ville blanche de Tel-Aviv[* – le mouvement moderne] || |||| 국가·위치 || [[이스라엘]] 텔아비브 관구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7px" [include(틀:지도,장소=Kikar Dizengoff, 너비=100%, 높이=100%)]}}}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4년]] || |||| 등재기준 ||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1096|1096]]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야파 오스만 술레이만.jpg|width=100%]]}}} || || '''19세기 팔레스타인의 호족 [[술레이만 파샤]]가 세운 사빌 (음수대)''' || || {{{#!wiki style="margin: -6px -10px -6px" [[파일:자파 사라이 오스만.jpg|width=100%]]}}} || || '''오스만 시기 건설된 [[사라이|{{{#000 사라이}}}]](관아)'''[* 이스라엘 건국 후 파괴되어 현재는 그 터를 알리는 기둥 열주만이 남아 있다.] || 원래는 이 근처에 있는 야파(Jaffa)[* [[가톨릭]] [[성경]]에서는 야포로, [[개신교]] 성경에서는 '욥바'라고 부른다. [[구약성서]] [[여호수아]], [[십자군]] 시대, [[대항해시대]] 등에 나오는 야파가 이 도시이다.]라는 [[고대]] 이래의 [[항구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대인]]들이 1906년부터 시작한 가정(Ahuzat Bayit) 운동이 기반이 되어, 1909년에 유대인 66가구가 [[조개]] 껍데기를 가지고 자그마한 마을을 건설한 것이 텔아비브의 시작이다. 1910년까지 도로망과 [[상하수도]], 유대인 [[학교]], 집 66가구 등을 지으며 '텔아비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각지에서 유대인 인구가 몰려들면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텔아비브와 야파 일대의 유대인들에게 [[오스만 제국]] 정부의 추방령이 내려지기도 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패망-[[세브르 조약|멸망]]으로 곧 철회되었고 [[팔레스타인]] 지역이 [[영국]]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아랍인]]과 갈등이 고조되었으며, 1921년 1차 야파 사태가 일어나자 유대 인구의 상당수가 텔아비브로 모여들면서, 2천여 명(1920)의 마을이 단 5년 만에 3만 4천 명(1925)의 도시로 바뀌었다. 본래 근처 도시인 야파의 항구를 통해 경제적 활동을 하던 이 도시는 [[1936년 팔레스타인 대반란]] 이후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사이가 극악에 치닫으면서 유대인들은 자체적인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48년 봄에 [[https://en.wikipedia.org/wiki/Provisional_government_of_Israel|이스라엘 임시정부]]가 텔아비브 시내에서 정식으로 출범했다. 텔아비브와 야포의 경계 분쟁이 계속되자 아예 1950년에는 텔아비브에 야포를 합쳐 텔아비브라 불렀다. 이후 야포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텔아비브-야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찌 되었든,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동전쟁]] 등을 통해 이스라엘 전역이 불안정한 와중에도 텔아비브만큼은 공격을 잘 받지 않았고,[* 100% 안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수도 예루살렘에 비해서는 텔아비브는 그나마 안전했다.'''] 덕분에 [[초고층 빌딩]]을 연속으로 건설했으니, 이스라엘 국민들도 대부분이 경제 활동을 위해 모이는 등 번성하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2016년 1월에 [[이스라엘 아랍인]]의 [[총기 난사]]로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치는 사태가 터졌다. 6월에도 [[팔레스타인인]]의 총기 난사가 또 벌어져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으니, 텔아비브 시내도 분위기가 좋지 못한 형편이다. 게다가 [[하마스]]가 걸핏하면 쏘아대는 [[까삼 로켓]]이 틈만 나면 떨어지다 보니 대피령도 자주 내리는 판국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