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톄링시 (문단 편집) == 역사 == [[춘추시대]] 이전에 이 지역은 [[숙신]]의 영토였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와서는 현재의 톄링시 남부는 [[요동군]] 관할이 되었고, 북부 지역은 [[동호]]의 영토가 되었는데, [[진나라]]와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남부와 북부 지역을 포함한 대부분이 [[요동군]] 관할에 들어가게 되었다. [[후한]] 때부터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서진]] 때까지 남부 지역은 [[현도군]]에, 북부 지역 중 지금의 카이위안시(開原市)·창투현(昌圖縣) 지역은 [[부여]]의 영토였다. [[동진]] 때에 이르러서는 이 지역은 현도군 관할이 되었고, [[남북조시대]] 때는 [[거란]]의 영토가 되었다. [[수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었다가, 고구려 멸망 후 남부 지역은 [[안동도호부]], 서북부 지역은 송막도독부(松漠都督府)의 관할이 되었다. 그리고 창투현 지역은 일찍이 [[발해]]의 [[서경압록부]]·부여부(扶餘府)의 관할에 들어갔다. 그 뒤 이 지역은 [[말갈|월희말갈]](越喜靺鞨)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713년([[당나라]] [[현종]] 2) 발해 [[고왕]]이 이 지역을 빼앗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4567|부주]](富州)를 두었다. 그러다가 917년([[요나라]] [[태조(요)|태조]] 11) [[야율아보기]]가 발해의 부주를 복속한 뒤 이 지역에서 은화를 제련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유로 이름을 은주(銀州)[* 이 지명은 현재도 [[톄링시]] 도심 중심부에 있는 인저우구(銀州區)로 남아 있다.]로 고쳤고, 현재의 톄링시 지역의 대부분이 동경도(東京道) 요양부(遼陽府) 관할이 되었다. [[금나라]] 때 남부 지역은 동경로(東京路) 함평부(咸平府), 서부 지역은 북경로(北京路), 북동부 지역은 상경로(上京路) 회령부(會寧府)에 각각 속하게 되었다. [[원나라]] 때는 서부 지역이 중서성(中書省) 회창로(會昌路)에 속하게 되었고, 그 나머지 지역은 개원로(開原路) 함평부(咸平府) 관할이 되었다. [[명나라]] 건국 후 1387년 이 지역에는 [[철령위]]가 설치되었다. 철령위 설치에 반발한 [[고려]]에서 [[요동정벌]]을 단행했다가 이듬해 [[위화도 회군]]이 벌어진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이 철령위는 1393년([[홍무]] 26) 지금의 [[선양시]]와 카이위안시 사이의 옛 은주 지역으로 옮겨졌고, 그 뒤 남부 지역은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 철령위, 서부 지역은 요하투(遼河套) 부여위(扶餘衛), 북부 지역은 삼만위(三萬衛) 등에 각각 편입되었다. 그리고 [[홍무제]]의 20번째 아들 한왕(韓王) 주송(朱松)을 지금의 카이위안시에 봉했다. 명나라 멸망 후 1664년([[청나라]] [[강희]] 1) [[강희제]]는 철령위를 폐지하고 이 지역에 철령현(鐵嶺縣)을 설치하였고, 인근에 설치된 개원현(開原縣)과 함께 봉천장군(奉天將軍) [[선양시|봉천부]](奉天府)의 관할이 되었다. 당시 철령현 지역은 지금의 시펑현(西豊縣)을 비롯한 북동부의 경우 봉금지대의 일부분이었고, 서부와 북부의 경우 [[내몽골]] 코르친부(科爾沁部) 소속이었다. 1907년([[광서]] 33) 봉천장군이 폐지되고 [[봉천성]]으로 개칭되자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1913년 남부 지역이 봉천성 요심도(遼瀋道)의 관할, 서부와 북부 지역이 도창도(洮昌道)의 관할이 되었다. 1929년 2월 5일 봉천성이 [[랴오닝성]]으로 개칭되어 랴오닝성 소속이 되었다. [[만주국]]이 건국한 뒤 요녕성이 다시 봉천성으로 개칭되어 봉천성 소속이 되었다.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양징위(楊靖宇)가 이끄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1군이 이 지역에 거점을 형성하기도 했다. [[국공내전]] 시에는 [[인민해방군]]이 게릴라전 끝에 1948년 10월 28일 도시를 접수하였다. 1948년 랴오베이성(遼北省) 소속이 되었다가 1949년에는 랴오시성(遼西省)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54년 9월 1일 랴오둥성(遼東省)과 랴오시성이 통합되어 [[랴오닝성]]이 되면서 랴오닝성 소속이 되었다. 이후 석탄 등의 광산업 거점으로 성장하여 1979년 지급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