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번 (문단 편집) === 전성기: [[송찬간포]]의 집권기 === 남리송첸의 아들 손챈감포(재위 617~649년 추정)가 불과 13세의 나이로 그 모든 것을 평정하고 통일 티베트의 서막을 열어 젖혔다. 633년, [[손챈감포]]는 스키타이 계열 유목민을 평정하는 한편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 후, 수도를 [[라싸]]로 정하고 토번(吐蕃) 왕국을 건설한다. 634년, [[손챈감포]]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예물을 교환하고 토번의 남쪽에 위치하는 [[네팔]]의 릿체비 왕조에 사자를 보내, 브리쿠티 데비(赤尊公主)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636년, [[당태종]]에게 당나라의 공주를 왕비로 맞기 위해 사신을 보냈지만, 토번이 당나라의 속국인 [[토욕혼]]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자 송첸감포는 20만의 군사를 일으켜서 토욕혼을 정벌하여 멸망시켰고, 겸사겸사 백란 등의 강족 마을도 공략한 후, 송주[* 현 쓰촨성 쑹판현]를 내놓으라고 당나라에 요구했지만 당군에 패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당태종에게 특사 가르통첸(재임 652~667)을 보내, 금 5천 령을 납폐로서 주었고, 당나라는 토번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641년 [[문성공주]]를 [[황후]]로 보냈다. [[파일:external/xyz.tingroom.com/1415153043-0.jpg]] 원래 문성공주는 손챈감포의 아들인 궁송궁첸에게 시집갔으나 아들이 낙마사고로 사망해 유목민의 [[형사취수제]]와 정략에 의해 시아버지랑 재혼했다. 사실 문성공주 자체의 혼인은 당시 당나라에게 있어 큰 사건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공주가 누구와 어떤 관계인지도 기록이 없을 정도. [[안시성 전투|안시성]]에서 토산을 쌓은 것으로 유명한 강하왕 이도종의 종녀(宗女)라는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문성공주와 손챈감포의 결혼을 두고 '''누가 숙이고 들어갔느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당태종이 [[공주]]를 시집 보내기는 토번이 3번째이다. 문제는 앞선 2번은 당나라가 상위의 입장에서 보냈기 때문에 이것도 당나라 우위의 결혼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일단 손챈감포는 문성공주가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문성공주가 '자면의 풍습'(얼굴에 적토를 바르는 풍습)을 싫어하자 이를 폐지하는 등 정성으로 대했다. 또한 친당정책을 시작해 당나라와 교역하며 인도에 사신을 파견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손챈감포 사후 양국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고 만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토번 왕국의 국력은 정점에 달한 시기였고, 명신 가르통첸의 개혁과 이로 인해 강화된 가르 가문의 집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성과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669년 안서 4진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면서 양국은 마침내 완전히 적대관계로 돌아서버린 것. 당나라는 당연히 반격을 가했지만, 이미 토번 왕조는 대외적인 제도 정비에 성공하고 군사력 또한 증가되어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699년 치둑송첸의 대숙청으로 [[가르친링]]이 제거되고[* 치둑송첸은 가르 가문과 톤미 가문을 숙청한 뒤 당을 공격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후 704년에 톤미 가문이 도망친 남만을 공격했으나 결국 죽고 만다.] 710년 금성공주의 혼인으로 일시적으로 화평했지만[* 이는 당이 710년 하서구곡을 넘겨준 시기였다. 토번은 이 지역을 통해 당을 마음껏 침공할 수 있었으나, 753년 [[가서한]]이 이를 탈환하고 만다.], 715년경부터 당나라가 토번에 대공세를 가해 토번의 영향력을 점차 조금씩 줄였고, 당의 명장이었던 [[고선지]]의 원정으로 그 성과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고선지]] 역시 [[탈라스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탈라스 전투 이후에도 고선지의 후임 안서절도사 봉상청이 대발률국을 공격하여 수복하고, 서역 여러 국가가 당나라에 조공하는 등 서역에 미치는 당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자치통감에는 탈라스 전투 이후에도 서역에 미치는 당의 영향력이 막강했다고 한다.], 안사의 난 이후 하서 및 농우, 안서 및 북정 지역의 군사들이 반란 진압에 소모되면서 당나라의 빈자리는 다시 토번이 차지하게 된다. 당나라는 토번에 매년 공물을 바치며 이들을 달래고자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