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사구팽 (문단 편집) ==== [[유방]]과 [[한신]]의 예 ==== [[고제(전한)|한고제]] 유방은 한신의 고사 때문에 토사구팽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유방은 지위를 깎은 적은 있어도 의외로 그냥 토사구팽을 목적으로 죽인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먼저 손을 댄 적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의심가는 사람도 알아서 빌면 대부분 용서해 줬다. 항우 휘하에 있던 자들을 수배했다가 다른 사람의 탄원을 듣고 수배령을 거둔 사례[* 계포일락이라는 말로 유명한 [[계포]]는 이렇게 수배령에서 해제된 뒤 한나라에 출사해서 고관대작까지 오르기도 하였다.]도 있고 심지어 사위 [[장오]]의 신하 관고가 유방의 '''[[암살]]'''을 획책하다가 잡혔는데도, 심문 내내 장오와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는 데다 유방이 장오에게 막 대한 것 때문에 빡쳐서 그랬다기에 장오를 왕에서 강등하고 나중에 후로 봉하는 정도로 끝내고 관고를 그냥 풀어준다. 관고는 장오가 강등당한 게 자기 탓이고 결국 황제를 죽이려 한 것은 잘못이라며 [[자살]]하지만. 말이 토사구팽이지, 한고제가 직간접적으로 죽인 공신 대부분은 먼저 그쪽에서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서 유방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관고의 암살 시도 정도가 몇 안되는 유방의 자업자득[* 사실 관고의 주인인 장오는 유방의 사위이기도 했고 원래 유방은 선비를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즉, 고제는 장오를 구박하듯이(물론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대하였고 이를 유교식 충성심을 가진 관고의 눈에 매우 티껍게 보였다는 것. 또한 장오에게 있어서 고제는 목숨을 위협받아 도망친 장씨 일가를 받아주고 딸과 결혼까지 시켜준 장인이자 은인이기도 해서 조금 구박받아도 크게 나설 수는 없었지만 공적인 것을 우선시하게 되면 신하에게 모욕을 주는 장면이 결코 보기좋을 리가 없었다.]이고 유방이 이후로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 외에는 어지간하면 용서를 빌면 봐주는 식으로 나간 것도 이 사건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100년 후 개국공신 가문 중 남아난 게 없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유방이 공신들을 핏대를 세우며 핍박했다는 이미지도 있는데, 실제로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공신으로 봉해진 이가 백여명인데 한무제 시기에 이르자 죄다 망해서 다섯 가문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남은 이들도 다 몰락해버렸다고 한다만, 정작 이런 공신 탄압은 한문제~한무제 동안 일어난 일이라 유방과는 무관하다. 그리고 소위 토사구팽을 인용한 [[한신]]은 사실 진작부터 [[사망 플래그]]를 쌓으며 사방에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유방이 아니라 어떤 군주라도 "임금님 죽도록 고생하시는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저도 바빠서 병력은 못 보내드리겠네요. 그건 그렇고 저 이번에 제나라 땅 먹었습니다만 제가 왕 하지 않으면 '''아주 큰일이 날 것 같은데''' 괜찮죠?"(…) 따위의 소리나 하는 천재 전술가를 의심없이 놔둘 순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냥 외교적으로 항복시킬 수 있었던 제나라를 공명심 때문에 [[역이기]]를 희생시켜가며 괜한 전쟁을 벌였고, 이겼으니 망정이지 까딱하면 동맹이 거의 없던 항우에게 엄청난 동맹국을 하나 안겨줄 수도 있는 실책이었다. 거기다 유방은 한신에게 북벌을 시켜놓고 본인은 항우를 붙잡고 늘어졌는데, 자기가 목숨 걸고 강적이랑 싸우면서 시간을 끌어주고 있는 판에 북방에서 이런 삽질을 하면서 쓸데없이 피를 흘리고 있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제나라의 민심 운운하는 구절도 수틀리면 유방을 공격하겠다는 협박이나 다름 없어 장량과 진평은 이를 반란 의사로 해석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시당초 이건 한신이 불러온 결과니 뻔뻔하기 그지없는 소리다. 거기다 이런 소리를 하면 자신을 추천한 소하가 무슨 말을 들을 지는 생각도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잖아도 소하는 일을 잘 해도 욕먹을 구실이 많은데,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남들은 전쟁터에서 뺑이치는 동안 혼자 후방에서 편하게 있었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소하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기 가문 사람들을 전쟁터에 보내야 했을 정도인데 그런 자신의 은인의 뒤통수를 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유방은 결국 한신을 죽이지는 않고 제왕을 줬다가 나중에 초왕으로 전봉했는데, 고제 및 대부분 개국공신들의 고향인 풍읍과 패현이 초나라 영토에 있으므로 전봉이라고는 해도 결코 좌천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중요한 곳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문제를 일으켜도 회음후로 또 격하했는데, 그이외에는 딱히 벌을 주진 않고 견제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도 [[다다익선]] 운운을 하며 성질을 돋우는 것을 참기도 하고. 그나마 이 때는 한신도 조금 눈치는 생겼는지 곧장 유방을 좀 띄워주기는 했다. 다만 이후에도 꾸준히 실언하며 인간관계를 조진 것을 볼때 그제서야 눈치가 생긴게 아니라 그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일수도 있다.(...) 사실 낙하산 인사에, [[역이기|아군]] 살해 전적에다, [[해하 전투|가장 중요한 때]] 딜을 시도하는 행동 등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부하들이 이미 입을 모아 트집거리만 잡히면 바로 한신을 죽이자고 벼르는 마당인데, 오히려 가장 화를 내야 정상인 유방이 미적지근하게 굴며 그나마 목숨이라도 보호해주려는 형세였다. 결국 기회를 엿보던 '''여후'''가 유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소하'''와 모의해 한신을 멋대로 살해했고, '''장량'''과 '''진평'''까지 이 결정에 동의해버리니 할 말이 없어진 유방은 우환거리가 사라진 것에 기뻐하는 한편으로 상당히 씁쓸해했다고 한다. 일단 반란을 일으킨 진회와 내통했다는 납득할 만한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처벌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고는 해도 마누라까지 껴있었으니...~~ 여후야 숙청을 원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나라의 일등공신이자 애초에 한신을 등용하길 건의했던 소하와 유방의 참모인 장량과 진평까지 한신을 죽이는 데 동조하거나 찬성할 만큼, 애초에 한신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유방 덕에 그때까지 목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한신은 결국 유방의 토사구팽이 아니라, 과장 좀 해서 유방이 살려주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한 것에 가깝다. 사실 유방 본인은 한신 이상으로 전쟁터에서 굴러다녔고, 항우에 비하면 백성들로부터 인망도 높은 데다가, 군대나 기타 신하들의 지지도 확고해서 전략과 전술에는 능해도 정치와 처세에는 형편없는 한신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었지만, 유방 사후 한신을 억누를 군사적 역량이 없는 여후에게 천하의 명장 한신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어 억지로 죽였다고 볼 수도 있다. 당장 삼진을 정벌할 때도 심복 부하라고 할 만한 인간이 주위에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괴철이 심복 역할을 했지만 결국 바람만 넣고 가버렸고 기껏 발굴한 이좌거도 고제에게 뺏겼다. 거기다 한신의 인간관계가 어지간히 안 좋은 것이 아니라서, 설령 반란을 일으켜봤자 동조할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당장 한신을 따르는 인재는 거의 전무했을 뿐 아니라 해하전투 직후 고제가 한신을 포박했을 때도 휘하 병사들은 전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요컨대 한신의 군대는 전부 고제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한신 개인에게는 충성심이 별로 없었던 것. 거기다 이전에도 고제가 단신으로 와서 한신의 군권을 빼앗았을 때도 한신의 군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진승상세가에선 한신이 '[[적반하장|천하가 안정됐으니 날 삶는 것도 당연하구나!]]'라고 하자 유방이 '''"너는 억울하다고 하지 마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유능하긴 했지만 계속 주인을 물어뜯으려고 하던 미친개였으니 사실 삶겨도 억울해할 자격이 없긴 하다. 한신이 한 죽을 짓이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절. 그 밖의 인물로, 영포는 숙청이 두려웠다는 당위성이야 있었지만 어쨌든 그 쪽에서 먼저 반란을 일으켰으니 죽였다고 해도 이를 가지고 토사구팽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팽월 정도는 확실히 억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팽월은 참소를 받아 죽은 거지 그 전까지는 왕노릇 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한신의 경우에는 진회의 반란에 동조한 혐의로 죽이긴 했지만, 여후가 한신을 죽이고 나서 댄 핑계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리고 한신과 마찬가지로 팽월의 죽음에도 여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팽월 본인의 잘못도 없지 않았다. 당장 [[고릉 전투]]에 오지 않아서 항우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오히려 유방을 죽을 뻔하게 만들었고, 왕자리를 약속하자 겨우 군사를 움직였던건 한신 뿐 아니라 팽월도 마찬가지였으니. 또한, 팽월은 제후의 의무인 중앙의 황제에게 세금과 공물을 거둬다 바치는 일을 매우 소홀히 했다. 팽월의 아랫사람들이 ~~저 살자고~~ 팽월에 대해 거짓 참소를 했고 마침 한신 못잖게 팽월이 꺼림칙했던 여후가 잡혀가던 팽월을 보고 ~~얼씨구나 해서~~ 고제에게 팽월을 죽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결국 죽게 된 것이다. 그 외에, 유방 본인이 여후를 견제하려고 번쾌를 숙청하려 했으나, 번쾌는 '여후의 여동생'의 남편이기도하고 숙청 전에 유방이 세상을 떠난지라 번쾌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유방 사후 번쾌는 아내인 [[여수]]를 통제하지 못했고, 그 자신도 여후에게 아첨하기 위해 선을 넘는 등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결국 여씨의 난때 여수와 그녀에게서 얻은 자식들은 전부 몰살당했다. 특히 여수는 아예 따로 구타당해서 죽었다고 한다. 계산적인 행위였지만 유방은 자신을 배반한 [[옹치]]에게도 상을 내려줬고, 옹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리고 소위 토사구팽으로 죽은 것은 전부 이성왕이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먼저 역심을 품었으며, 그게 아닌 소하, 조참, 주발, 번쾌, 하후영 등 한고제와 같이 거병한 고향 친구들은 고제의 의심을 받은 적은 있어도 대부분 자기 수명대로 살았고 장량, 진평 등 참모진이나 나중에 유방군에 합류한 관영, 장이, 역상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위험했던 건 여후 때거나 혹은 이후 문제나 경제 시절이다. 소하의 경우, 소하의 자리는 상국이라서 원래 의심을 받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다. 이외에 노관이 연왕에 임명될 정도로 총애를 받았지만 정작 흉노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대응했다가 죄를 받을 것이 두려워서 흉노로 튀었다. 이후 고제한테 돌아가서 용서를 빌려고 했으나 그 전에 고제가 사망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다. 사실 튄 것도 고제보다는 여후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