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사구팽 (문단 편집) === 기타 === * 명 태조 [[주원장]]은 말 그대로 피비린내나는 토사구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냥 실무자 말고는 말 그대로 싹쓸이를 했는데 심지어 1년에 '''3만 명의 권신들과 그 일가족까지''' 죽여버리기도 했다. 그 덕택에 넷째아들 주체가 쉽게 황위를 계승하여 전성기를 열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주원장은 장손인 [[건문제|주윤문]]를 위해 한 짓이었으나[* 물론 원래는 장남이자 태자였던 주표를 위한 것이었으나 주표는 일찍 죽었다.] 정작 혜택을 본 이는 사남 [[영락제|주체]]였다. 주원장이 공신들을 다 숙청해버리는 바람에 [[영락제|주체]]가 반란을 일으켰어도 이를 누를 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 ~~그러니까 토사구팽의 원탑은 명 태조다.~~ *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토사구팽을 보여준 인물은 [[북송]] 태조 [[조광윤]]과 후한 세조 [[광무제]]다. * 조광윤은 후주로부터 선양 받을 때 술에 취해 진중에서 자고 있는 동안 자기 동생인 조광의가 장군들을 선동해서 황제의 옷을 걸치게 하고 바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송을 세웠다...고 기록은 전한다. --아무도 안 믿지만 아무튼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황제의 위에 오른 후 개국공신들을 불러서 술판을 벌이던 도중 술 한잔 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나는 술먹고 뻗어있는거 너희들이 황제옷을 입혀줘서 이렇게 황제도 됐다만, 너희들은 또 너희 부하한테 어디서 용포 하나 구해서 걸칠 수도 있겠구나. 너희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네 부하들까지 사고 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냐.'''란 드립을 쳤다. 공신들이 술이 확깨서 '아니 폐하 어째서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라며 바싹 엎드리니까 조광윤은 계속 술을 빨면서 '''인생 뭐 있어? 어차피 황제 할 생각 없으면 고향 내려가서 명예직이나 하며 부유하게 살다가 애들이나 키우면서 편안하게 죽으면 되는거지. 니들도 그렇게 할래?'''라고 결정타를 날렸다. 그 자리에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물론 문서상 약속은 아니었지만 다음 날, 조광윤 앞에 나온 공신들은 자발적으로 모든 실권을 내놓고 고향 내려가서 명예직이나 하며 부유하게 살다가 애들이나 키우면서 편안하게 살다가 갔다(…). [[당(통일왕조)|당]] 말기부터 [[오대십국시대]] 내내 중국대륙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절도사들의 병권을 너무나 간단하게 수거한 사건이라서 과장이 섞인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북송]]의 개국공신들을 살해하지 않고, 아무 조건도 없이 조용히 집에 보내준 것은 분명 사실이다. 숙청은 맞지만 피를 보지 않은 숙청이라고 할까? 물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보상을 해야 하므로 공신들에게 막대한 부를 나눠줘 초반에 경제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반란을 일으켜서 진압하려 할 때 쓸 군자금과 비교해보면 싸게 먹힌거다. 이 조광윤의 일화를 가리켜 --명예퇴직--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고 한다. '술자리에서 병권을 놓게 하다'는 뜻. 사실 토사구팽과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지만, 배주석병권 문서가 없으니 여기서 서술. * [[광무제]]의 경우에는 광무제는 공손술을 토벌한 뒤 왕망이 망쳐놓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일부 전쟁을 제외하면 거의 전쟁을 벌이지 않으려 했고, 군비도 꽤 줄였다. 이 과정에서 광무제 휘하의 명장들인 운태 28장들은 문관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하던 등우 등을 비롯한 몇 명만 빼고는 다들 '''자진해서 은퇴'''했고, 광무제도 이들에게 국가 원로로서의 대우는 해줬지만 조광윤처럼 크게 파격적인 대우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광무제의 숙부뻘 되는 이까지 왕에서 공으로 대우가 낮춰졌는데, 대단한 건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통일 전에 일부 반항하던 자들은 다 죽었지만.(…) 후한 2대 황제인 한명제 때에는 간접적인 토사구팽이 있었는데, 개국공신을 기리는 영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원#s-1|장인]]을 일부러 빼버렸다. 공을 세운 정도에서 절대 꿀리지 않을만큼 큰 공신이었으며 황제의 장인이었음에도 마황후 본인이 스스로 앞장서 외척을 막고자 일부러 빼버린 것. 황제의 장인까지 찬밥신세가 되어버리니 다른 공신들도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고 남은 자들 중에서도 낙향한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광무제 때 별 다른 일 없이 자진 사퇴한 자들이 많았던 것은 광무제 본인의 재능이 너무 출중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곤양대전에서 단 1만명의 병력으로 43만의 신나라 대군을 격파한 바 있다. * 현대 [[중국]]에서도 토사구팽으로 여겨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군사적으로 제일 유능했던 [[린뱌오]]와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에 의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린뱌오는 권력문제로 마오쩌둥과 반목하여 앙심을 품고 [[571 공정|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던 중 [[9.13 사건|비행기가 추락해서 일가와 함께 몰살]]당했고,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을 비판했다가 그의 분노를 사 권력을 모두 빼앗긴 뒤 [[홍위병]]에게 구타당하고 차디찬 감방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옥사했다. 하지만 마오는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4인방]]은 린뱌오나 펑더화이처럼 스스로는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 철저히 마오의 위상과 권력만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었고, 결국 4인방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권력을 쥐게 되면서 중국을 말아먹었다. 다만 단순 숙청이 아니라 조리돌림까지 당하는 굴욕을 받은 평더화이(팽덕회)의 경우엔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마오쩌둥의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고전소설 [[수호전]]에서는 양산박의 호걸들이 조정에 귀순하자, 조정에서는 그들을 역적들의 토벌에 투입하고는 반란이 모두 진압되자 조정에 복귀한 양산박 호걸들을 죽여버린다. 하지만 정말로 양산박의 호걸들을 몰살하거나 한 건 아니고 두목인 송강과 노준의 등 핵심인물만 죽였고 그때까지 전사하지 않았던 나머지들은 대부분 낙향하거나 몇몇은 군문에 들어갔고 자연사 또는 병사하였다. 이규는 특이하게도 장래 화근이 될 것을 우려한 송강이 자신이 죽기 전에 직접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