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사구팽 (문단 편집) == 피하는 법 == 공훈을 많이 세운 사람이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토사구팽을 반드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행동하면 그건 그거대로 의심을 받는다. 반란 전의 기초공사 차원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미리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쓰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소하]] 같은 경우는 일부러 진상짓을 하고 소인배 코스프레를 해서 의심을 풀기도 했다. 아니면 [[범려]]처럼 싹 정리하고 은둔하는 방법도 있지만, 위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주원장의 경우,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 선비들조차 불충이라는 이유로 색출해서 죽여버렸기 때문에 은둔이라는 최후의 방법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장]] [[왕전]]은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를 공격하면서 일부러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면 넓은 논밭과 화려한 저택을 달라고 계속 졸라댔는데, 의심이 많은 [[시황제|진시황]]의 성격을 간파하여 "그저 재물과 노후의 편안한 생활에만 욕심을 부리고 정치에 큰 뜻은 없는 늙은이"로 보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당시 왕전의 작전은 장기전이었는데, 소모하는 시간도 길고 요구되는 병력도 많은 터라 [[위화도 회군]] 마냥 쿠데타가 일어날까봐 정작 자기 군주인 진시황이 견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으로, 실제로 성공하여 작전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었고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또한 유방을 도와 [[전한|한나라]]를 창립한 일등공신 [[소하]]도 승상이 직위임에도 청렴결백하게 사치를 부리지 않는 생활을 했으나, 유방은 거대한 권한을 가졌던 소하를 수시로 의심하면서도 비위를 살살 맞춰주려 노력했다. 유방은 오히려 한신은 은근히 만만하게 본 반면 소하의 변절은 죽기 직전까지 두려워했다. 소하는 4년동안 소년병을 동원하고 노인에게까지 수레를 끌게 시키면서 후유증이 3대에 이를 정도로 자원을 뽑아냈는데, 아무리 항우의 만행이 있더라도 이쯤 되면 소하에게 불만이 향할만한데도 오히려 인망이 하늘을 찔렀다. 모르긴 몰라도 유방이 기겁할 만큼 선동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 소하가 의심받았던 것은 결국 소하가 한나라의 행정 총책임자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소하가 기침 한번만 해도 행정이 올스톱이 되고 반대로 소하가 맘만 먹으면 쥐어짜서라도 유방에게 필요한 것을 보급할 수 있었다. 괜히 유방이 고집을 부려서라도 공신 1순위로 소하를 꼽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안해진 소하는 주위사람들의 충고로 가족 중 젊은 남자를 죄다 전쟁터에 보내는 등 온갖 노력 끝에 유방을 안심시킬 수 있었고, 통일 후에도 어느 정도는 사치를 부려야 유방의 의심을 안 산다고 하자 그 말에 따른다. 나중에 유방이 죽기 직전에 소하를 의심하여 [[감옥]]에 잠깐 가두는데, 주변 사람이 소하의 결백을 간언하자 유방은 소하를 가둔 걸 후회하고 풀어준다. 반대로 한신은 천하통일 후 찌질이 시절에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을 불러 자신을 모욕한 사람은 꾸짖은 뒤 풀어주고, 밥을 나누어준 노파에겐 보답을 내렸는데, 유방과 여후가 '저놈이 갑자기 멋진 짓으로 인기를 끌려 하는 게 수상하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저러는 거 아냐?'하고 의심했다는 말이 있다. 보다시피 소하와 한신은 어그로도, 처신도 급수가 다르다. 소하는 유방이 전쟁터에서 항우와 맞서 싸우느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유방이 필요한 것을 전부 보내줬고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어떤 처신도 잘 해낸 덕에 제국의 충신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한신은 그렇잖아도 온갖 어그로를 다 끈데다가 의심받을 짓만 골라서 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저서 '로마사 논고' 1권 제 29장과 30장에서 토사구팽의 구체적 사례와 원인, 대상자가 이를 피하는 방법을 다뤄 일종의 '토사구팽 가이드'를 썼다. 군주정의 경우 군주의 시기심과 역모에 대한 불안감, 공화정의 경우 쿠데타에 대한 우려가 토사구팽의 원인이라고 보았고 이런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정쩡하게 굴지 말고 공을 세우자마자 권력을 내려놓고 군주에게 엎드리거나, 아니면 아예 군주가 손대지 못하도록 [[권신]]이 되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재물욕을 보이는 게 오히려 꼬투리 잡힐 수도 있다. 어설프게 왕전을 흉내내려 한 [[난릉왕]]이 좋은 예시. 다만 이는 단순히 재물욕만 보이려는 게 아니고, 계속된 전투에 병사들 사기도 떨어지고 비축된 물량도 떨어져 그걸 확보하기 위함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난릉왕의 혈통이 황족이라는 것'''까지 포함하다보니 당시 황제였던 [[고위]]가 위협을 느꼈던 것. 결론은, [[노답|정답은 없다]]... 주군의 성격에 따라 처리법은 그때그때 다른 것이며, 필요할 땐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아예 [[위연|군주의 소원대로(?) 반란을 일으켜주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성공하는 경우는 더 말할 것 없고, 실패하더라도 반역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니,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토사구팽은 아니다.]] 유능한 모습을 최대한 숨기고 공이 있어도 주군의 덕분이라며 위상을 살려주는 것도 토사구팽 자체를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 하겠지만 군주가 강직한 성품이라면 그게 오히려 거슬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무능한 신하, 아첨꾼, 간신 등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처세한 신하들은 당대 군주들 생전에는 무사했지만 차기 군주들의 눈에 나서 뒷끝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후한의 등통, 청나라의 화신 등이 그 예시. 다만 토사구팽을 할 확률이 낮은 때가 있긴 하다. 세조처럼 탈법적으로 집권한 경우엔 그 기반이 불안정하다. 탈법적인 방식으로 집권했어도 태종처럼 나름의 명분과 기반이 있다면 모를까 세조같은 경우면 또 다르다. 태종은 조선 건국에도 지대한 공이 있었고 또, 세자가 아무 공도 없는 막내라 정통성 면에서 매우 떨어졌던 데다가 세자를 보좌하던 정도전은 나이많은 왕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병 혁파를 내세웠지만 이게 지나쳐서 정씨가 이씨를 내몰려고 든다는 말을 듣게 되고 결국 왕족들이 태조가 아니라 태종의 편을 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세조의 경우 단종은 문종과 더불어 정통성 면에서는 매우 탄탄했고 보좌하는 신하들도 세종과 문종을 거쳤고 직접 선왕으로부터 단종을 부탁받은 고명대신이므로 명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 경우에는 얼마나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느냐에 달렸다고 보면 된다. 단 이것도 그 지도자가 자신을 지도자로 만들어준 공신들을 대체할 수 있는 기반이 없을 때를 전제한다. 그 세조도 한명회, 신숙주 등의 구공신을 견제하기 위해 남이, 구성군, 강순 등의 신공신을 키워 견제하려고 한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