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스카나 (문단 편집) === [[중세]]시대 ===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난 후에는 [[고트족]]의 [[동고트 왕국]]과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고, 569년 [[랑고바르드족]]이 점령하면서 루카를 수도로 하는 투스키아 공국을 세운다. [[랑고바르드 왕국]]이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무너지고 이 지역은 먼저 백작령(county)이 되었다가 [[토스카나 후작령|후작령]](march)으로 승격된다. 11세기에 토스카나 후작 작위는 토스카나주 북쪽에 인접한 카노사, [[만토바]], [[모데나]], 레지오 에밀리아를 영지로 삼고 있는 카노사의 아토니 가문에 가게 된다.[* [[카노사의 굴욕]]의 그 카노사가 맞다.] 이 시기에 토스카나에는 많은 성과 수도원들이 들어서게 되고, 이 지역 도시들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점차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코무네''commune''[* 중세에는 시민들이 귀족으로부터 독립되어 스스로 방위하고 통치하는 자치도시들이 많이 등장했다. 주로 중북부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프로방스 등)에 많이 형성되었고, 주로 로마시대 주요 도시들이 자치도시로 존속했다. 성벽으로 둘러싼 도심과 망루 등 요새도시의 특성을 주로 보여준다. 독일의 자유도시, 프랑스의 코뮌(근대의 코뮌과는 다르다!!), 이탈리아의 코무네 등 다양한 형태,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하고 발전했다. 훗날 제노바, 베네치아, 피사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원형이기도 하다.]를 형성하게 된다. 루카가 최초의 코무네였고, 피렌체, 루카, 아레초, 시에나도 코무네로 발전하여 서로 다투며 발전해 나갔다. 반면 토스카나 남부(그로세토)는 알도브란데스키 가문의 영지로 봉건질서 하에 있었다. 중세에 이 지역은 로마와 프랑스를 오가는 순례자들 덕분에 음식과 숙박 사업 등을 통해 교회와 여관을 중심으로 부를 쌓았다. 11세기 [[피사]]는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해안에 면한 입지조건을 살려 지중해 곳곳에 교역도시를 세우고 식민도시로 삼는 등 지중해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고 십자군전쟁에서도 주된 역할을 하게 된다. 피렌체와 시에나, 루카는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하하는데, [[플랑드르]] 지방(오늘날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과 [[프랑스]], [[영국]]에까지 지점을 세우는 등 세계적인 사업을 영위했다. 루카는 또한 주요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했다. [[피사 공화국]]은 멜로리아 전투에서 [[제노바 공화국]]에 패배한 뒤 13-14세기에 걸쳐 쇠퇴하게 되고, 반면 [[피렌체]]는 아레초와 피사를 점령하여 15세기부터 토스카나 지역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문화적 중심지로 군림했다. 피렌체의 남은 상대는 시에나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