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요타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8Ka3Dk5w3js)]}}}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F5vtCRFRAK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5MMPJvjKNWY)]}}}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istoryoftoyotalogo.jpg|width=100%]]}}} || || {{{#ffffff '''토요타의 로고 변천사'''}}}[* 1936년에 쓰던 중앙의 로고는 일본 국내의 일부 공장 간판이나 토요타 사내에서 드물게 쓰이고 있다. 1978년 4월부터 1989년 9월경까지는 광고 등에서 로고없이 빨간색 'TOYOTA' 글씨만 사용했다. 현 로고는 50주년인 1989년 10월 2일부터 등장했다.] || [[토요다 사키치]]가 창업한 토요다 자동방직기제작소가 모태로, 현재의 자동차생산 사업부는 1933년 9월 1일에 신설되었다. 이후 1937년에 별도 법인으로 떨어져 나온 것이 현재의 토요타이다. 초대 사장은 토요다 리자부로(豊田利三郎)[* 토요다 사키치의 사위], 현재의 최고경영자는 창업주의 후손[* 정확히는 [[증손|증손자]]. 할아버지가 토요타 자동차생산 사업부의 대표였던 [[토요다 키이치로]](豊田喜一郎)이다.]인 [[토요다 아키오]](豊田章男)이다.[* 토요다 리자부로 초대 사장은 창업주의 [[사위]], [[토요다 키이치로]]의 [[매부]]다. 참고로 토요다 아키오나 그 아버지인 [[토요다 쇼이치로]]의 아내는 모두 [[미쓰이그룹]] 재벌 출신. 토요타가 미쓰이의 사장회 회원사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3대 자동차 회사(토요타, [[혼다]], [[닛산]]) 중 유일하게 가족 경영 체제를 이어온 회사로,[* [[혼다]] 역시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의 성을 딴 회사이기는 하나, 이쪽은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닛산]]은 아예 [[프랑스]]의 [[르노]]에 인수되어 르노 출신의 [[카를로스 곤]]이 들어와 오랫동안 최고경영자로 있었다.] 창업주 토요다 사키치부터 시작해서 그 후손들까지 쭉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으며[* 물론 토요다 가문 사람들만 경영을 맡아온 건 아니고 중간에 내부 승진으로 올라온 경영자들이 몇몇 있긴 있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세습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 토요다 가문의 영향력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당연히 그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기에 사실상 족벌 경영 체제라고 봐도 틀리진 않다.] 지금은 증손자대(4세대)까지 내려왔다. 한편 사명은 창업주의 성씨인 豊田을 딴 회사 이름이기는 한데, 이 사람의 성은 토요'''타'''가 아니라 토요'''다'''이다. 그런데 왜 회사 이름이 '토요타'냐 하면 그쪽이 어감이 더 좋아서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토요다 사키치가 서양인들이 발음하는 걸 보고 서양인들에겐 'TOYODA'보다 'TOYOTA'가 더 발음하기 쉬워서 바꿨다는 게 정설이다. 1936년부터 상호를 '''토요타'''(トヨタ)로 변경하였다. 공식적으로 [[한자]]가 아니라 [[가타카나]]로 쓰는데 '''이름 획수가 합쳐서 8획이면 운이 좋아서''' 이렇게 했단 얘기도 있다. 1930년대 창립한 후 [[쉐보레]], [[포드 모터 컴퍼니|포드]], [[크라이슬러]] 등의 외제차를 구입 및 분해해 분석하고 먼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일본인 개척자들을 영입했다. 당시 일본에서 수요가 적은 자동차용 강철을 만들어주겠다는 제강소도 없었기에 제강소도 직접 만드는 노력 끝에 1935년 자체 부품이 들어간 A1형 시제 승용차와 G1형 상용 트럭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패전 후 1949년 일본 전체가 닷지 라인 불황에 빠졌을 무렵, 토요타자동차는 경영위기를 겪는다. 토요타자동차는 당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행, 거래업체 등에 채무상환유예, 대금지불유예를 요청했지만 딱 두 회사로부터 거절당한다. [[스미토모은행]]은 토요타의 채무상환유예를 거절하면서 칼같이 채무를 회수해갔고, [[카와사키 중공업|카와사키제철]]은 대금지불유예를 거절한다. 이때의 충격으로 창업자 토요다 키이치로가 급사했고, 정말 말 그대로 토요타는 망할 뻔했다. 이 시기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중형트럭이었던 [[토요타 BM]]을 생산하며 겨우 회생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토요타는 그때의 원한을 기억하며 모든 거래에서 [[스미토모은행]]과 카와사키제철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일단 스미토모은행에는 절대로 대출하거나 예금을 맡기지 않았다. 그리고 스미토모은행이 1965년 자신의 거래업체인 프린스자동차가 경영위기를 겪자 토요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당시 토요타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딱 잘라 거절했다.]]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을 살 때도 카와사키제철의 것은 절대로 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회사와의 거래는 1949년의 경영위기로부터 50년 이상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재개되었는데, 이는 모두 토요타와의 거래관계에 있던 은행, 회사와 경영통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거래가 재개된 것이다. 스미토모은행과는 [[미쓰이|미쓰이 계열]]의 [[사쿠라은행]]과 경영통합되어 미쓰이스미토모은행으로 재탄생하자 거래를 튼다. 다만 이때도 거래관계는 구 사쿠라은행 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카와사키제철 역시 일본제관과 합병하여 JFE스틸로 재탄생하면서 거래가 재개되었는데, 역시나 구 일본제관 쪽 인물을 통해서만 거래한다고 한다. 참으로 질긴 원한... 참고로 미쓰이그룹[* 토요다 가문의 처갓집이었다.]과 일본제관은 토요타가 경영난을 겪었을 때 채무유예, 대금지불유예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토요타 본사 인근에 있는 나고야 사람들의 특성의 예로 거론되기도 한다. 1970년대 전 세계적인 [[오일 쇼크|석유 파동]]을 겪은 시점부터, 상대적으로 연비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 부각되어 폭발적으로 판매량이 증가, [[토요타 코롤라|저렴한 가격에 믿을 만한]] [[토요타 캠리|내구성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미]]에서는 아직도 중고차 감가상각이 가장 적은 차량들 중 하나가 토요타 물건들이다. 이는 패전 이후 복구 과정에서 미국에서 배척받았던 에드워즈 데밍의 품질관리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혁신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1989년에 런칭한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LEXUS)를 산하의 별도 디비전으로 두고 있다.[* 청년층을 타겟으로 한 [[사이언(자동차)|사이언]](SCION)도 있었으나, 2016년에 사라졌다.] 그리고 최초의 렉서스 차량인 LS의 일본 내수 사양인 [[토요타 셀시오]]에 최초로 현재 사용되는 로고가 적용되었다. 지분관계를 통한 자회사로 편입된 완성차 업체는 상용/특장차 부분의 히노(HINO)와 경승용차 전문 기업인 다이하츠가 있다. [[4WD]]/[[수평대향엔진]] 기반 차량에 특화되어 있는 [[스바루(자동차)|스바루]] 역시, 렉서스/다이하츠/히노와는 다른 형태로 토요타와 협력관계에 있다.[* [[http://www.toyota.co.jp/jpn/company/links/|토요타 공식 웹사이트의 관련링크 일람]]을 참조할 것. 이 리스트에 후지중공업은 없다. GM은 후지중공업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인수한 토요타는 현재 16.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토요타와 스바루는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대신 자본 제휴 관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기술교류를 행하고 있다. 어차피 토요타와 스바루는 지향하는 고객층이 달라서 완전히 통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스바루의 주력차종인 레가시/아웃백/엑시가/포레스터/임프래자 등 스바루의 고유 모델과, 새로 출시하는 경차나 소형차는 다이하츠/토요타의 모델을 스바루에서 도입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토요타 86]]/스바루 BRZ와 같은 공동개발차량도 판매되고 있다.] 2008년 최초로 '''세계 판매 1위''' 자동차 기업이 되었다. 허나 잘 나가던 토요타도 2010년 역사상 최악의 위기인 [[토요타 리콜 사태]]를 맞는다.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악재까지 설상가상으로 발생하여 [[제너럴 모터스|GM]]의 1위 탈환을 허용했지만 2012년 1분기에는 '''다시 세계 1위를 탈환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8&aid=0002846853|AutoM 기사 내용]] 심각한 위기(그것도 안전과 관련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난 것을 보면 토요타의 네임밸류(브랜드가치)가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6년 6월 9일, 파격적인 [[재택근무]] 혁명을 발표했다. '''주 2시간'''만 회사에 출근하면 된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발표한 이유로는 경력직 여성들이 육아와 부모 부양으로 인해 퇴직을 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총 직원의 35%에 해당하는 25,000명에게 시행한다. 이는 파격적인 경영 실험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http://www.sedaily.com/NewsView/1KXJB5T2KQ |관련기사]] 2016년 10월 12일, [[SUZUKI|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토요타 자동차와 제휴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전격발표했다. 이로써 일본의 자동차 3강([[토요타]], [[혼다]], [[닛산]]) 구도가 더욱 명확해지게 되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4&aid=0000054404|관련기사]] 2023년 10월, [[이데미츠코산|이데미츠]]와 손을 잡고 대량생산 고체 배터리를 개발하여 2027~2028년에 생산 예정인 전기차에 적용할 것이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해당 배터리는 완충시 주행거리 1,000km에 DC 급속충전기로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10분 소요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https://insideevs.com/news/691084/toyota-idemitsu-solid-state-battery-ev-2027/|#]] 2024년부터 토요타, 히노, 이스즈가 힘을 합쳐서 전기버스를 생산한다고 한다. [[https://www.google.com/amp/s/www.forbes.com/sites/sebastianblanco/2022/02/28/toyota-will-build-electric-buses-with-hino-isuzu-in-2024/amp/|#]] 그리고 2023년 10월 [[이스즈 엘가]] 전기버스가 공개되었으며 2024년부터 판매에 들어간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