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역 (문단 편집) == 역사 == 인류가 성장하면서 말이 통하는 모집단 외의 집단을 만나면서 통역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통혼]][* 혹은 전쟁으로 약탈혼, 납치혼]을 해서 양쪽의 말을 유창하게 하는 아이가 태어나 통역을 하거나, 주로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통역업무를 같이 보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국가의 [[외교]] 체계가 매우 복잡해지면서 전문적으로 통역원을 양성하는 기관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 같은 경우 [[고려]] 1276년(충렬왕 2)에 참문학사(參文學事) 김구(金坵)의 건의로 통문관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이후 고려 말기에 사역원으로 개편되고 [[역관]] 시험을 쳐서 뽑는 역관제도가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잡과]]로 계속 이어저 왔다. 국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통역가가 생기고 필요에 따라 통역을 고용했다. 예를 들어 [[일본인]] [[승려]] [[엔닌]]은 [[당나라]]에 [[불교]]를 배우러 여행을 했는데[* 이 여행을 [[여행기]]로 남긴 기록이 [[입당구법순례행기]]다.] [[신라]]인 통역관 김정남을 대동했다.[[http://db.history.go.kr/id/ds_001r_0010_0010_0070|#]] 여행 목적지가 신라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도중에 신라 해안을 거치며 표착할 수도 있고, 당나라에 도착해서도 9세기 중국 해안지대에는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신라방]] 커뮤니티가 깔려 있었고 이들은 현대의 [[여행사]]처럼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에 중국 여행에 신라어 통역관을 데려간 것이다. [[조선]] 말기에 여러 서양국가들과 교류하면서 서구언어의 습득이 절실해져 1883년에 외아문의 부속기관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영어교육기관인 동문학(同文學)을 설립하였다. 이후 근대적 교육이 도입되면서 원산학교 같은 사립학교에서도 외국어를 가르쳤고 1895년에 <외국어학교관제>를 제정하여 사립학교를 관립으로 흡수 개편하거나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여 외국어를 가르치고 통역원을 양성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된 후 전문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