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일국민당 (문단 편집) === 의외의 진보적 정책들 === 재벌 회장 치고는 공세적인 통일 정책[* 물론 1989년에 북한에 방북했던 일이나 1990년대 말 [[금강산 관광]] 사업, 소떼 방북 등의 대북사업을 펼친 걸 보면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애초에 정주영은 강원도 실향민 출신이다. 게다가 5공 청문회에서도 민주화 이전 군부독재에 침묵했던 것에 대해 용기가 없어 그랬다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는 등 여러모로 정주영 본인 성향 자체가 의외로 리버럴한 부분이 많았다. 재벌 회장이니 으레 우파라고 보는거지 사실 살아온 행적이나 발언만 보면 보수와는 거리가 있다. --사실 국보법 폐지와 재벌 해체만 보면 이 나라에선 좌파였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과 반값 아파트 등의 파격적인 정책, 여성 유권자 표심을 위한 여성 정책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통일국민당이 내건 정책이다. * '''반값 아파트''' * '''[[국가보안법]] 폐지''' [[시사저널]]이 주최한 대통령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정주영 회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공약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는 "현 헌법에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만큼 '''[[이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공산당]]도 합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조중동과 민자당으로부터 [[매카시즘]]성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 대학 입학정원 폐지 및 졸업자격제 도입 및 사학 육성 교육열이 지금보다 더 극심했던 당시로서는[*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당시의 대학정원이 수험생들의 1/3 수준이었기 때문에 1/3만 대학에 진학할수있었고, 나머지 2/3는 재수생활을 하던가 일찍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흔히 586세대들이 대학가며 꿀발았다는 얘기도 실상은 대학정원이 적었기 때문에 대기업 진학이 쉬웠다는 애기에 가까우며, 대다수는 중소기업 공장에 취직하거나 자영업일을 하는것이 일반적이었다.] 파격적인 정책이었고, 김영삼 정부도 교육열을 해소할 방안으로 대학정원의 완전자율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설립 자율화로 정원을 대대적으로 늘리며 2000년대에 대학진학률 80%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2010년대 이후 인구감소 추세와 함께 부실대학이 증가해버리고 말았다. 또한 졸업자격제의 경우에는 1980년대에 실패했던 [[졸업정원제]]를 대신해 공약했던것으로 대다수 대학이 졸업논문, 어학시험 등으로 실질적 졸업자격제를 실시하고 있다. *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정주영이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장본인임에도 당시로서는 터무니 없다는 평가였으나 2020년대에 와서 정체구간 지하화를 통한 복층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 [[국민학교]]·[[중학교]] 전면 [[무상급식|무료급식]]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무상급식은커녕 급식을 하는 학교가 적었던 시절로, 이때는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에서조차도 무상급식 논의가 나오기 전이었다. 이 얘기가 나온 지 6년 뒤인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급식이 전면 실시됐다. 또한, 학교 급식에는 국내 농축수산물을 반드시 써야 한다라는 논의 정도가 나왔다. 그만큼 시대를 앞서나갔던 기발한 공약이었던 것. 시간 차는 있지만 영국 제외한 서유럽은 20세기 중후반에 이미 교육과 의료는 절대평등한 공공재여야만 한다는 사상이 퍼져 진작에 했었지만 유럽도 개념이 완전히 잡히기 전이었다. 참고로 '무상급식'은 '[[유니세프|베푼다]]'는 성격이 강하지만 '무료급식'은 당연한 '[[권리]]'라는 성격을 지닌다. * '''[[재벌]] 해체''' 당수가 한국 재벌의 아이콘인 정주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파격 그 자체였다.[* 낙선되고 난 이후엔 재벌 해체 주장을 따로 하진 않았다. 다만 훗날 [[왕자의 난#현대그룹 (2000)]]이 발생하자, 이사회, 전문경영인 중심의 투명한 경영을 천명하면서 2000년 5월 정주영 본인, 정몽구, 정몽헌 3부자가 동반퇴진하긴 했다. 이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으나, 어찌됐든 얼마 안가 정주영 본인은 노환으로 사망한다.] * [[여성부]] 설립 및 여성할당제 실시 다른 정책에 비해선 실현 가능성이 높았다. 직선제 이후 유권자 절반이 여성인 고로 자연히 여성 친화적 정책이 생기기 마련이고 실제 여성가족부도 머지 않은 시기에 생겼으나 딸, 며느리 할 것 없이 대외 노출을 꺼리는 걸로 정평이 난 현대가의 가풍에 비추어선 파격적인 부분이 있다. * 금연 공약 당시는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선진국 국민들도 일반인이건 엘리트건 레스토랑에 가면 스테이크 먹고 나서 옆에 재떨이 놓고 실내에서 담배 피우면서 대화하던 시기다. 90년대 중반부터 EC 협의로 실내금연 개념이 퍼져나갔고,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야 퍼져나갔던걸 생각하면 10여년은 앞선 공약이었다. 실제 정주영도 흡연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혐연에 가까웠다. 이유는 돈이 아까워서라고.. 물론 당의 강령과 정책을 보면 알겠지만 강령에서는 민주자유당에서는 복지경제의 실현을 추구했고, 민주당은 자유경제 체제를 보장하지만 부의 공정한 분배와 중소기업 우선발전을 통한 정의로운 경제질서 확립을 추구한 것에 비해서, 통일국민당은 자유시장경제를 명시한 점이나 경제 정책에서는 시장경제에 대해서 정부의 관여를 최소화했다는[* 군부정권에 데인 정주영 본인 심정이 녹아들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정주영이 재벌 회장 마다하고 정치판에 굳이 나온 것도 그 시절 한 같은게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점으로 봤을 때 대기업 총수 출신으로서 시장경제 분야에서는 친시장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