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일국민당 (문단 편집) === [[제14대 대통령 선거|14대 대선]] === [[정주영]]은 14대 총선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1992년 가을에는 [[민주자유당]] 내에서 반 김영삼 계열이었던 [[김복동]], [[박철언]], [[이자헌]], [[유수호(정치인)|유수호]] 등 민정계 인사 일부가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통일국민당에 입당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투표 결과 '''천만 명'''의 당원을 가지고도 400만도 안되는 16.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영삼]], [[김대중]]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정주영은 [[울산광역시|울산]]에서도 현대 표가 거의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울산시 동구에서는 46%를 얻어 1위였으나, 그 외 지역에서는 모두 김영삼에 뒤진 2위였다. 울산 시가지만을 기준으로 하면 약 30%, 울산군(현 울주군)을 포함하면 약 28%를 득표.] 가히 당황했다고. 게다가 선거 며칠 앞두고 터진 [[초원복집 사건]]의 역풍을 맞아 보수층이 전부 김영삼으로 결집하는 바람에 현대 일가(임직원 + 가족)의 표와 중도층 표만 받으면 이길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노쇠한 정주영의 눈과 귀를 가린 측근들의 정보 왜곡으로 인해 정주영 본인은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외국 소식통에서는 정주영의 당선을 확신한다"는 엉터리 조사보고서가 테이블에 오르기도 했다고.] 초원복집 사건이 최대 반향을 일으킨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서는 6~10%대 득표율을 올려 대패했고[* 부산에서는 박찬종 후보에게도 밀려 4위를 기록했다.]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강원도]]에서마저 김영삼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참고로 이 선거는 언론사와 전문업체의 과학적 여론조사가 없던 마지막 선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여론조사 개념이 없던 건 아니라서 한국갤럽에서 13대 대선 예측 결과(다만 당시엔 예측조사 공표 자체가 선거법 위반인 관계로 발표는 일본 방송을 통해서 했다. 현재와 같이 예측조사를 발표하기 시작한 건 1995년 지방선거 때부터의 일) 1988년 총선을 앞두고 여러 언론사에서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전화 조사를 통해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민주화된 지 얼마 안되었던 시기이다 보니 한계점은 있었다.][* 물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집권당은 1987년 대통령 선거부터 해외 전문가들을 불러 내부 여론조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이들로부터 조사기법을 전수받아 초보적 수준에서 독자적인 여론조사를 시작한 게 현재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팀이다. 여기서 여론조사 기법을 배워서 나간 회사가 [[리얼미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