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일국민당 (문단 편집) === 원조 [[제3지대 정당]] === 초기에는 경제 권력층에게 정치 권력까지 주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많았으나, "정치 자금을 한번에 '''100억원''' 낸 적도 있다"라고 폭로하면서 현대가 오히려 정경유착의 피해자라는 시선도 생기고 당시로는 굉장히 진보적이고 참신한 정책들, 비정치권 명망가들 영입으로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국민당은 [[3당 합당]] 이후의 양당이자 계파 싸움이 치열하던 [[민주자유당|민자당]]과 [[민주당(1991년)|민주당]] 사이에서 공천 탈락한 인사들을 대거 --이삭 줍기--입당[* YS가 당권을 잡은 후 벌어진 선거여서 YS의 민주계 반대 세력인 민정계, 공화계 사람들이 대거 입당했다.][* [[김한길]] 같은 인물은 원래 [[민주당(1991년)|민주당]] 인사였지만 공천 탈락 후 이곳에 입당해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전적이 있다. 김동길의 경우도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진보, 개혁인사였지만 정주영과 손을 잡은 이후에는 성향이 바뀐다.]시켜 反YS, 非DJ 정서가 컸던 [[대경권|TK]] 지역, [[강원도]],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충청 지역 등을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또한 경제 정책은 뒷전이고 당파 싸움만 계속 일삼는다는 이미지의 민자당이 아닌 새로운 보수 정당을 원하는 일부 보수, 중도성향 및 부동층 유권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으며, 특히 [[중산층]] 이상 부유층에게도 민자당 대신 대안이 되었다. 실제로 총선과 대선에서 [[강남3구]]를 비롯한 고가 아파트, 특히 40평대 이상 대형 평수 아파트가 위치한 [[부촌]]에서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세상에 재벌 해체 공약은 못 봤나-- 특히 [[재벌]]출신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공약, 즉 재벌 해체라는 공약을 대표적으로 내세웠다.[* 사실 재벌 해체라고 해도 본격적인 부의 재분배나 [[경제민주화]]같은 내용이 아니었던 걸 감안하면 정책들이 중산층이나 부유층의 이익과 상충된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또한 3김에 신물나던 젊은 유권자 상당수의 지지를 얻었다.[* 주로 구 통일민주당 성향의 유권자 상당수. 김영삼이 민정당, 공화당과 연합한 것에 실망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김대중을 뽑기에는 1987년 대선의 기억 때문에 반감이 남아 있던 유권자층이었다.] 물론 민중당이나 신정당이 조직력에서나 화제성 면에서 크게 밀렸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40대 이상 유권자층에서 지지율이 낮게 나왔던 것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3270032912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3-27&officeId=00032&pageNo=21&printNo=14358&publishType=00010|서울 부유층 지역 국민당에 몰표.]] 그리고 [[최불암]][* 최영한이라는 본명으로 출마], [[강부자]], [[이주일]] 같은 인지도 높은 [[연예인]]들을 영입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