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투르크메니스탄/역사 (문단 편집) === [[사파비 왕조]]의 팽창 실패 === 티무르 제국이 멸망할 무렵 시아 이슬람을 광신[* [[이스마일 1세]]를 비롯한 사파비 왕족들은 자신들이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직계 후손으로서 일리와 [[후세인]]의 복수를 위해 모든 순니파를 쓸어버려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사파비 왕조의 왕족들은 정기적으로 이슬람 초창기 4명의 칼리파 중 알리를 제외한 나머지 3명([[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이븐 아판]])을 참칭자라며 저주하는 예배를 근행했으며, 키질바시들은 활쏘기를 연습할 때 “이 화살이 우마르의 심장에 꽂히기를”이라는 말을 구호로 외쳤다 한다.]하는 사파비 왕조가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 흥기하여 [[순니파]] 백양 왕조를 멸망시켰다. 백양 왕조 시기까지 페르시아인들은 대부분 순니파 이슬람을 믿고 있었다. 백양 왕조를 전복한 사파비 왕조가 순니파 무슬림들을 강제 개종, 학살, 추방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 전역에서 순니파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이에 [[아제리인]] [[키질바시]]들은 아제르바이잔 인근 [[조지아]], [[아르메니아]], [[체르케스]], [[다게스탄]] 일대의 기독교인들을 납치해 시아 12이맘파로 강제 개종시킨 후 [[맘루크]]로 만들어 이란 각지에 주둔시켜 순니파들의 봉기를 차례로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인 순니 무슬림 상당수가 이웃한 [[오스만 제국]]와 [[부하라 칸국]] 등으로 탈주하였으며 이로서 이란은 시아파 다수 지역이 되었다. 이후 사파비 제국과 우즈베크족의 부하라 칸국이 호라산 지역을 두고 격전을 벌였다. 사파비 왕조는 정복한 지역의 순니파들을 강제로 시아파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며, 이 와중에 호라산 지역 전체가 시아파 지역에 될 수도 있었다. 우즈베크 칸국과 사파비 왕조는 특히 호라산 동부의 교역 중심지 [[헤라트]]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사파비 왕조가 이 지역의 투르크멘족들을 통일하는데 실패하면서 호라산 서부 일부 지역만 시아 이슬람 지역으로 만드는데 그쳤다. 사파비 왕조 몰락 이후에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가 한 때 이 지역을 다시 정복하는데 성공하지만 나디르 샤는 순니파였다. 호라산 북부 지역은 샤이바니 왕조에 이어 히바 칸국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전통적인 페르시아 문화권이었던 호라산 지역은 사파비 왕조의 팽창 실패로 투르크 문화권으로 남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