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투르크메니스탄/역사 (문단 편집) == 고대 == [[파일:old-nisa5.jpg]] 아슈가바트 인근, 옛 파르티아 수도였던 [[니사]] 유적 기원전 8000년경부터 농경이 이어져 왔다. 청동기 시대에는 이른바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라고 불리는 아리아계 정주 농경민들의 문화권이 번성하였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에 인도-유럽어족 유목민으로 추정되는 다하이 인들이 살았으며, 이후 기마 유목민인 [[스키타이]]족과 [[마사게타이]]족이 이 지역을 차지했으며 오늘날 투르크멘 지역에 위치했던 해당 유목집단을 통틀어 다헤(Dahae)라고 부른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절에는 박트리아 속주에 속했으며, 이 지역은 인구가 적어서 많은 세금을 기대할 수 없었으나 페르시아군에게 막강한 기병 전력을 제공했다 한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리디아 왕국]]을 정복하면서 금속으로 된 [[화폐]]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이 화폐 제도는 페르시아 동부 호라산 지역에도 전파되었다. 다른 한편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은 이 지역을 반란자들을 유배시키는 지역으로 활용하였던 듯 하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다리우스 1세]]는 리비아 해안지대의 바르카(Barca)라는 도시에서 주민들이 반페르시아 폭동을 일으키자 도시 주민 전체를 멀리 호라산 지역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이오니아의 해안지대의 그리스인들의 폴리스 [[밀레투스]]가 봉기하자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인들은 봉기를 진압하고 주민 상당수를 노예로 만든 후 박트리아 각지로 이주시켰다. [[스트라본]]과 [[아리아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약 150년 후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박트리아에 도착했을 당시 주민 상당수는 그리스어와 박트리아 현지어가 혼합된 기이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페르시아를 정복할 당시 이 지역의 마사게타이족 기병들이 마케도니아군에게 상당히 애를 먹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중무장 기병으로 마사게타이 기마궁수들을 제압한 이후 이 지역의 오아시스에 '알렉산드리아 마르기아나'라는 도시를 세우는데, 이 도시는 나중에 [[메르브]]의 기원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