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니스 (문단 편집) ==== 쿠라산 왕조 ==== ||[[파일:튀니스 카스르 사원 1.jpg|width=400]]||[[파일:튀니스 카스르 사원 미흐랍.jpg|width=492]]|| |||| (아마도) 아미르 아흐마드 대에 세워진 카스르(왕궁) 사원과 미흐랍. 많은 중수를 거쳤고, 미나렛은 1647/8년에 재건되었다. |||| 파티마 왕조는 튀니지 동해안에 신도시 [[알 마디야]]를 건설해 수도이자 해군 기지로 삼았고, 따라서 투니스는 한세기 이상 소외를 겪었다. 944년 아부 야지드 마크라드의 카와리지 과격파 반란 시에 카이라완에 이어 945년 투니스 역시 점령된 후 약탈되었다. 동시에 마크라드는 알 마디야를 포위하며 파티마 왕조의 존립을 위협하였지만 포위가 장기화되자 반군은 지쳤고, 파티마군의 반격에 결국 포위는 풀렸다. 이에 투니스와 베자 등지에서는 친파티마 봉기가 일어나 조정에 귀순하였고, 그에 힘입어 반란은 948년 진압되었다. 세력을 회복한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를 정복한 후, 973년 [[카이로]]로 천도하였다. 남은 이프리키야 지역은 베르베르계 [[지리 왕조]]에게 위임되었다. 파티마 왕조에 충성하던 지리 왕조는 과거 함마드 왕조처럼 1047년 순니 이슬람으로 전환하며 독립하였고, 보복으로 파견된 바누 힐랄이 내륙을 파괴하였다. 이로써 지리 왕조의 지배력은 튀니지 해안 일대에만 국한되었다. 1057년 카이라완 함락 후 지리 왕조가 약화되자 투니스 주민들은 알제리의 [[함마드 왕조]][* 함마드 왕조는 지리 왕조 2대 에미르 알 만수르 이븐 불루긴이 그의 삼촌인 함마드 이븐 불루긴을 현 알제리 일대의 총독으로 임명한 것에서 시작하므로 어디까지나 지리 왕조의 방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에 복속하였다. 그에 따라 총독으로 파견된 산하자 베르베르계 아미르 압둘 하크 이븐 압둘 아지즈 이븐 쿠라산은 바누 힐랄로부터 도시를 방어, 질서를 회복한 후 1059년 쿠라산 왕조를 세워 독립하였다. 1063년 지리 왕조의 아미르 타밈이 투니스를 공격했지만 격퇴되었고, 압둘 하크의 통치를 인정하였다. 압둘 하크는 1095년까지 안정적으로 통치하였고, 사후 두 아들들이 계승한 후 장손 아흐마드 이븐 압둘 아지즈(재위 1107 ~ 1128년)가 즉위하였다. 후에 투니스에서 강의하는 역사가 [[이븐 칼둔]]에 의해 쿠라산 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아미르로 여겨진 그는 바누 힐랄에 대비하여 도시를 두르는 성벽과 요새화된 궁전을 세웠고, 도로의 안전을 확보하였다. 쿠라산 왕조 하에 투니스는 지중해 무역을 통해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흐마드의 사후 함마드 왕조는 재차 투니스를 점령, 20년간 지배하였다. 한편 [[1차 십자군]]을 피해 투니스로 피신해왔던 시리아 출신의 그리스인 요르요스는 지리 왕조의 해군에 복무하다 갈등을 겪은 후 [[시칠리아 왕국]]으로 귀순하였고, 1131년부터 그 해군을 이끌고 북아프리카 해안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146년 트리폴리에 이어 1148년 알 마디야가 점령되었고, 수스가 복속하며 지리 왕조는 멸망하였다. 혼란을 틈타 투니스 시민들은 카디 아부 무함마드 압둘 무민 이븐 아불 하산을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그는 이내 바누 리야흐 출신의 무흐리즈 이븐 지야브로 대체되었는데, 아흐마드의 사촌 아부 바크르 이븐 아흐마드가 밤을 틈타 광주리를 통해 투니스 성내로 잠입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복원된 쿠라산 왕조는 동서로 시칠리아 왕국에 포위된 형국이었고, 따라서 그 군주인 [[루지에로 2세]]에게 곡물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재위 1149 ~ 1159년)의 통치기에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아브드 알 무민]]은 함마드 왕조를 멸하고 동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