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니스 (문단 편집) ==== 무와히드 vs 바누 가니야 ==== 그러던 1159년, 아흐마드의 아들 알리가 아미르로 즉위한 직후 투니스는 포위되었다. 그해 7월 12일, 70척의 무와히드 함대는 굴레타 호수를 가로질러 튀니스를 점령하였다. 마지막 아미르 알리는 도시 원로들의 간청에 따라 아만(안전 보장)이 주어져 축출되었고, 아브드 알 무민은 대신 주민들의 재산 절반을 취하였다. 아브드 알 무민은 트리폴리에 이어 1160년 알 마디야를 함락하며 이프리키야를 평정하였다. 점령 후 알 마디야는 파괴되었고, 카이라완 역시 쇠퇴한 상태였기에 투니스는 일대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였다. 무와히드 왕조는 시내 서부의 카스바에 이프리키야 총독부를 두었고, 이때부터 투니스는 튀니지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1184년 아브드 알 무민의 후계자 [[유수프 1세]]가 사망한 후 [[발레아레스 제도]]에 웅거하던 [[무라비트 왕조]]의 후예 알리 이븐 이샤크[* 무라비트 조의 아미르 알리 이븐 유수프의 증손이다.]가 알제리 해안을 침공하여 선조의 왕국 재건을 위한 기나긴 투쟁에 나섰다. 1185년 무와히드군에 의해 알제리에서 밀려난 알리는 튀니지-리비아 해안에 집중, 바누 힐랄과 함께 투니스와 알 마디야를 공격하였다(1187년). 분노한 무와히드 칼리파 [[야쿠브 알 만수르]]는 친정에 나서 튀니지 일대를 수복하였고, 사막으로 도주한 알리는 이듬해 사망하였다. 부흥운동을 이어받은 동생 야흐야는 [[제노바 공화국]] 및 [[아라곤 왕국]]과 동맹하여 안달루스-마그레브 해안을 습격하였다. 1195년 야흐야는 트리폴리, 카이라완, 안나바 등을 점령하였고 1203년 무와히드 왕조에게 본국인 마요르카를 상실했음에도 그해 12월 14일 투니스를 점령하며 알제리 동부에서 리비아 서부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듬해 그는 내륙의 카와리지 베르베르인들을 나푸사 산에서 격파, 배상금을 받아낸 후 투니스로 개선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성립된 바누 가니야[* 무라비트 왕조와의 차별성을 위해 가문의 시조인 무함마드 이븐 알리의 모친 가니야의 이름을 붙였다. 파티마 왕조와 비슷한 경우이다.] 토후국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1204년 가을 무와히드 칼리파 무함마드 앗 나시르가 대군을 모아 진격해오자 야흐야는 투니스를 포기하고 [[제르바 섬]]으로 향하였으나 도중 따라잡혀 대패하였다. 그후 1205년 투니스와 알 마디야는 무와히드 왕조에 항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