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역사 (문단 편집) == 튀르키예 민족의 역사 == [include(틀:터키 민족의 역사)] *참조: [[튀르키예인]] *참조: [[튀르크족]] [[파일:Mahmud_in_robe_from_the_caliph.jpg|width=400]] 튀르크 계 왕조인 [[가즈니 제국]]의 첫 [[술탄 마흐무드]]가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 칼리파가 하사한 옷을 입어보고 있다. [[튀르크족]]과 [[튀르키예인]]의 개념은 다르다. [[튀르키예]]가 Turk라는 [[튀르크족]]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표현을 선점해버렸기에 오해하기 쉽다. [[튀르키예인]]은 [[튀르크족]]의 일부이다. [[튀르키예인]]은 혈통적으로 이슬람 왕조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란계, 아랍계 등 많은 민족과 이슬람이라는 공통체 안에서 존재하였다. 이슬람 왕조 자체가 인종적 구분보다는 무슬림, 비무슬림의 구분이 더 강하였고 튀르크인들 자체가 오스만 튀르크 이전 아랍과 이란인의 영향으로 이슬람화되었기 때문에 튀르키예인의 외모는 중앙아시아인보다는 유럽, 중동인에 훨씬 가깝다. 그러나 튀르키예인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과거 아나톨리아 반도에 거주했던 고대 민족들에게서 찾기 보다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튀르크족]]에게서 찾았었다. 이러한 [[튀르키예인]]개념은 [[튀르키예어]]를 말하면 [[튀르키예인]]이라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다인종적인 개념이다. 다만 최근에 고고학의 발전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의 존재에 대한 연구와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고, 특히 람세스 2세 시절 최전성기에 있었던 고대 이집트와도 맞장 떠서 비길만큼 강성했던 [[히타이트]] 문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튀르키예인들의 민족적 정체성도 변화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를 떠나 유럽의 일원이 되려는 튀르키예의 정책과도 일정 부분 맞물리고 있다. 사실 핏줄로 따지면 튀르크인 뿐만 아니라 히타이트인도 튀르키예인의 조상으로 볼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인식에 따라 튀르키예 민족의 역사를 [[튀르크족]]에 초점을 둬 기술한다. 튀르키예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돌궐]][* 돌궐(突厥)은 투르크를 한자로 차명한 글자다. 당시 세워진 오르혼 명문비석엔 '괵튀르크'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며 현대 튀르키예에서는 돌궐을 괵튀르크 제국이라고 부른다.]로 보고있다. 돌궐 제국은 선비족계통이 건국한 당나라와 대립하다 가한이 사망하여 잠시 멸망하였지만 독립적이였고 이후 다시 돌궐 2제국으로 발흥하여 당나라를 유린하였고 서쪽에서는 셀주크 튀르크, 동쪽에서는 위구르 제국이 나타나 위세를 떨다가 위구르는 키르기스에 의해 멸망한다. 실제로 돌궐은 과거 6세기 때에 [[돌궐]]-[[고구려]]-[[백제]]-[[일본]] 이 4개국 연합 체제에 속해 있었으며, 몇몇 튀르키예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대하는 근거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많은 튀르크 제족들 중에서도 오우즈 스텝(이 표현은 민족명에서 유래했다)에 정착한 [[오우즈]]족이 현대 튀르키예 민족의 뿌리가 되었으며, 현 튀르키예어가 오우즈 어파로 분류되는 것도 오우즈족의 영향이다. 이들은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의 초원 지역에 '오우즈 야구브국'을 세웠으며 이들 중 일부가 남하하여 [[셀주크 제국]]을 세운다. 셀주크 제국의 치하에서 아나톨리아 지방에 튀르크인들이 정착하게 되고 이들이 [[룸 술탄국]]을 세우면서 아나톨리아 지방에 튀르크족의 영향력이 커진다. 이들 중 오스만 족이 성장해 [[동로마 제국]]을 무너트리고 [[오스만 제국]]을 세우면서 [[튀르키예어]]와 튀르키예 문화의 영향력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확대된다. 잘 나가던 오스만 제국이었지만 근현대에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면서 서구 열강에 의해 [[오스만 제국]]이 갈가리 찢어질 위기에 놓인다. 이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를 서구 열강에게서 구하고 [[튀르키예어]]를 쓰면 [[튀르키예인]]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민족주의 바람을 일으켜 현재 [[튀르키예인]]의 튀르키예 민족 개념이 잡히게 된다.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동한 오우즈족 외에 다른 오우즈족들은 현지에 남아 [[투르크메니스탄]] 성립에 기여하거나 혹은 일부는 북서쪽으로 빙 돌아 발칸반도에 정착해 [[가가우지아|가가우즈족]]이 되기도 하였다. 이란으로 흘러온 오우즈족들 중에서 이란 북서부에 정착한 이들은 [[사파비 제국]]의 지배층이 되기도 했으며 [[아제르바이잔]]의 성립에 기여했다. 현재 튀르키예 교과서에선 559년 중국을 이긴 [[돌궐]]을 실질적인 자기들 조상들 역사로 배우며 [[1959년]]에 건국 140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그리고 [[몽골]]에 있는 톤유크 장군 비석을 연구하는 등의 조상들 역사로 연구에 노력하고 있다. 튀르키예 역사에서는 튀르키예 땅의 역사와 튀르키예 민족의 역사를 따로 구분해서 보며, 마찬가지로 오늘날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옛 문명들 - [[히타이트]], [[트로이]]([[윌루사]]), [[프리기아]], [[리디아]] 등등 - 또한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이며 흔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 시절 아나톨리아에 대해서는 언급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며 그리스의 역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