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정치 (문단 편집) === [[군부]]와 [[정치]] === 튀르키예 내의 군부의 위치는 상당하다. 유사시 징병가능한 병력만 2,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군사력에, 아타튀르크나 그 뒤를 이은 이스메트 이뇌뉘 같은 장군 출신들이 1차 대전 이후 튀르키예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냈기에 군부에 대한 대우나 인식이 좋은 편이다. 심지어 경찰은 썩어서 부정부패 저지르고 잔다르마(Jandarma, 헌병)가 와서 이를 바로잡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 실제로 튀르키예 헌병들은 민간 치안일도 병행하고 있다. 관광유적지에 가면 순찰차를 세워놓고 돌아다니는 헌병들을 볼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군부의 특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인권문제는 물론이고, 6.25때 튀르키예 참전에 이바지한 당시 총리 [[아드난 멘데레스]](Ali Adnan Ertekin Menderes)를 군부가 쿠데타로 축출하여 기어코 교수형시킨 것이 멘데레스가 너무 세력이 커진 군부 힘을 줄이고자 노력한 게 원인이었다. 이 사람도 이슬람 강경파들을 견제하고, 반공 정책을 취했으며 해외 자본 참여 같은 일도 풀어주며 개방적으로 이끌던 인물이었다. 후일 멘데레스는 명예가 복권되었고, 후손들은 국가 연금을 받으며, 교과서에서도 여러 일로 잘했는데 군부와 충돌로 인하여 죽게 되었다고 뒤늦게 우호적으로 수정되었다.[* 물론 좋은 평만 있는 것은 아니고, 아드난 멘데레스는 튀르키예 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평가가 갈리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세속주의 튀르키예를 이슬람 원리주의로 회귀시키려 한 포퓰리스트 독재자였다는 평가도 많이 받고 있으며, 한땐 경제가 순항하기도 했으나 결국 경제위기로 실각하고 마는데 실제 그의 집권기에 튀르키예 경제는 파탄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리고 튀르키예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강한 후유증을 유발한 1980년 [[케난 에브렌]](Ahmet Kenan Evren)의 쿠데타 역시 군부가 벌인 흑역사. 튀르키예의 [[전두환]]이나 [[후안 페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라 할 수 있는 에브렌은 대통령 중심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독재자가 되어 7년 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렇게 군부가 [[쿠데타]]를 벌여서 선거로 집권한 정부를 뒤엎고 대통령과 총리를 몰아내는 일이 자주 벌어졌는데, [[1960년]]을 시작으로 [[1971년]], [[1980년]], [[1998년]], [[2016년]]까지 10여년을 주기로 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반복되면서, [[유럽 연합]]에서는 이 일을 문제삼아 튀르키예의 EU 가입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젠 [[유로존]] 문제도 있고... 이 때문에 튀르키예는 여러가지로 강대국이 될 여건이 큰데도, [[군부]] 때문에 발목을 잡는다고 [[포브스]]에서도 보도할 정도로 알아준다. 위에 멘데레스 일에서도 언급하듯이 군부 고위직들이 여러 국영사업체들을 맡는 것도 문제. 튀르키예 정치에서 군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모순적인 결과로 귀결되며, 이는 종종 튀르키예 정치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튀르키예 정치에서 군부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튀르키예 세속주의의 수호자'일 것이다. 튀르키예인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며, 신앙심이 꽤 깊은 편이다. 아무리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꾸준히 세속화, 튀르크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튀르키예 사회에서 세속주의의 대척점에 위치한 이슬람주의가 아예 힘을 잃었다고 하는 것 역시 무리다. 오히려 히잡을 쓰고 등교하고 싶다는 작은 욕구에서부터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무능과 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것까지 다양한 이유로 이슬람주의는 꾸준히 힘을 얻고 있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 [[의회]]제도, [[선거]]제도 등은 모두 서양의 문물이며, 튀르키예 정치에서 [[이슬람주의]]에 대항해 이와 같은 서구의 제도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군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힘을 얻은 이슬람주의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서구의 제도를 지켜야한다는 군부의 입장은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수호한답시고 전혀 민주적이지 못한 방법을 써야 하는 이 모순적인 모습은 아타튀르크 이래 튀르키예 군부가 튀르키예 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다. 튀르키예 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 지역에서도 이러한 '''군부의 권위주의 + 세속주의는 반대로 대중들로 하여금 민주주의 + 이슬람 극단주의(중에서 그나마 온건파)를 선택하게 한다'''는 해석도 있다. 민주주의가 자생할 만 하면 군부가 무력을 동원한 편의주의로 개입하여 헌정질서를 교란하는 것 또한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러한 군부 개입의 한계는 [[2016년]] [[7월 16일]]에 벌어진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군부는 20세기에 했던 것처럼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튀르키예를 통제중이라고 방송을 통해서 주장했다. 허나 군부는 세속주의와 정교분리를 지키기 위해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해 정변을 일으켰으나 정작 많은 튀르키예인들은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공화인민당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 대표도 --속내야 어떻든-- "민주주의의 주인이 되자"라는 트윗으로 쿠데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취소선이 그어져 있지만 전혀 빈말이라 볼 수 없는 게, 공화인민당은 뷜렌트 에제비트의 지휘하에 [[키프로스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977년 선거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군부 쿠데타의 도움 없이 여당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일부는 쿠데타를 스스로 막고 나섰다. 덕분인지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고, 이는 더이상 군부가 무력으로 세속주의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