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반트 (문단 편집) == 번외: [[바르트부르크]]와 바르카스, 작센링 P240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only-carz.com/wartburg-353w-04.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바르카스.jpg|width=100%]]}}} || || {{{#000 바르트부르크 353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 || {{{#000 바르카스 B1000}}}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1957_Horch_Sachsenring_P240_IMG_0308.jpg|width=100%]]}}} || |||| {{{#000 작센링 P240}}} || 1956년부터 1991년까지 [[아이제나흐]]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된 트라반트의 상위 모델인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세단과 1958년부터 1990년까지 카를 마르크스 슈타트[* 현 독일 [[켐니츠]] 시.]의 바르카스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된 구 동독의 [[현대 스타렉스]]와 [[현대 포터]]나 다름 없던 바르카스(Barkas)는 트라반트 사의 601과 동일한 지위와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1955년부터 1959년까지 생산된 동독의 최고급차 작센링 P240(Sachsenring P240)이 있었다. 바르트부르크와 바르카스 모두 1L급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작센링 P240은 호르히 제 2.4리터 6기통 엔진이 장착되었다. 바르트부르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바르트부르크|해당 문서]]를 참조. 바르카스는 동독 내 승합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동독에서 생산된 상용차 계열의 차량이 이 차량 밖에 없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동독 국내에서도 바르카스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대표적으로 바르카스 B1000의 밴 모델을 [[http://heavycherry.com/machineinfo/barkas/-b_1000-1986-van_or_truck_up_to_7_5t-ambulance.html|구급차]]나 [[https://www.flickr.com/photos/126584084@N05/15192615737|경찰 호송차량]] 등의 관공서용 차량으로 개조하여 운용하기도 했다. 또한 B1000은 중형 트럭 형태도 별도로 판매하였는데, 적재함을 떼어 내고 트레일러나 유개 등을 장착할 수 있는 세미 트럭 형태라서 범용성이 상당히 뛰어나, 캠핑카나 카고 트럭, 냉동 탑차 등 아주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현재도 몇몇 잔존 차량이 [[푸드 트럭]]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4sDFv_mNNVo)]}}} || || {{{#000 작센링 P240 오너와의 인터뷰 영상 (독일어, 영어 자막 존재)}}} || 작센링 P240은 당시 차량을 호르히 브랜드에서 작센링 브랜드로 전환하자마자 [[타트라 603]]과의 차량 생산 및 판매 경쟁에서 지는 탓에 소련 행정부의 수출 금지 철퇴를 맞고 단종까지 되는 비운을 안고 사라진 차량이다. 상술하듯 원래는 서독 [[아우디]]의 계열사였던 호르히 브랜드로 생산되었으나[* 이외에도 [[https://en.wikipedia.org/wiki/BMW_326|BMW 326]] 차량의 설계가 아이제나흐 자동차 공장으로 옮겨진 뒤에 디자인 변경으로 [[https://en.wikipedia.org/wiki/BMW_340|BMW 340]]라는 차량으로도 생산되다가 이후에 EMW(Eisenacher Motorenwerk) 브랜드로 생산되는 등 50년대까지는 당시 동독에는 서독의 자동차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동독의 국영 자동차 기업 IFA가 설립된 후에도 아직 여러가지 문제로 동독의 자동차 공장들이 서독 자동차 회사들 지시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던 때였기도 하고, 동독에 있던 서독 자동차 기업 직원들도 있었기 때문.] 1958년에 당시 동독에 있던 전직 호르히, 아우토 우니온의 소속 인원들끼리 손잡으면서 고급차 브랜드인 작센링이 출범하게 되어 회사 이름도 바뀌었는데, 소련 행정부 측에서는 작센링 P240과 타트라 603[* 사실 말이 좋아 자동차 끼리만이지, 당시에는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사이의 공업력 경쟁이기도 하였다.]과의 생산 및 판매 경쟁을 하여 진 쪽은 해외 수출을 불허 시킨다는 희대의 치킨 게임을 제안해 결국 둘이 박터지게 생산 판매 실적을 경쟁하지만, 종국에는 작센링 P240이 패배한 탓에 해외 수출을 불허 당하게 되는 것은 물론 동독의 최고위층들이 타트라 603, 고위층들은 다른 차량을 구매하게 되는 탓에 판매 실적조차도 줄어들어 차량도 단종, 브랜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만, 이 작센링 P240은 일단은 호르히 브랜드로 판매되었단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비록 서독에서 정신적 후속 모델이지만 [[아우디 100]]을 후속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분류:독일의 자동차 제조사]][[분류:독일의 없어진 기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