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야누스 (문단 편집) === 출생과 본가 === 트라야누스 황제의 즉위 전 본명은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고대 [[라틴어]]로는 MARCVS VLPIVS TRAIANVS]로, 속주 히스파니아[* [[스페인]]]의 도시 이탈리카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년도는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대략 서기 53년생인 듯하다. 위로는 누나 [[울피아 마르키아나]]가 있는데, 황제의 누나는 법무관을 지낸 이탈리아 귀족 태생의 부유한 원로원 의원 파트루이누스와 결혼해 딸 [[살로니아 마티디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증조모]와 외아들 파트루이누스를 뒀다. 트라야누스 사후, 그녀의 혈육들과 인척들은 상호 입양을 통해 안토니누스 황실을 이었는데 그들이 바로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콤모두스]][* 콤모두스는 부, 모 모두를 통해 트라야누스의 피를 이어받은 안토니누스 가문의 정통적자였다.]다. 트라야누스의 울피우스 씨족 가문은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의 [[페루자]] 근처 도시 토디에서 기원한 라틴혈통의 이탈리아인 가문이다. 하지만 상술했듯 황제의 직계조는 일찍이 히스파니아의 이탈리카로 건너가 정착했으며, 황제의 가계는 일찍부터 현지 여성들과의 혼혈이 진행돼 사실상 히스파니아인과 다름 없는 로마인이었다고 한다. 트라야누스 가문은 히스파니아 내 지방 소도시의 유력 가문이긴 했으나, 로마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애초에 트라야누스의 부친 이전까지는 로마 중앙 정계에 아예 존재감이 없는 가문이었고, 황제의 외가 역시 오래된 이탈리아의 마르키우스 가문인 것을 제외하곤 중앙정계 내 입지에선 사실상 히스파니아인 출신 상류가문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트라야누스 가문은 트라야누스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 가문의 이름이 중앙 정계에 처음 나타나게 되는데, 그 시기는 베스파시아누스가 트라야누스의 아버지에게 귀족 칭호를 부여했을 당시였다. 그러나 트라야누스의 아버지는 이미 [[클라우디우스 1세]] 시절 원로원에 입성한 원로원 의원이었고, 플라비우스 왕조 이전 등장한 신참자였다. 때문에 그는 결코 연줄 덕분에 귀족 반열에 오른 인물이 아니었다. 황제와 동명이인이었던 부친 트라야누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직속 부하로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네로]] 시대의 명장 [[코르불로]] 휘하에서 베스파시아누스와 마찬가지로 군단장을 지낸 장군이었다. 그는 제1차 유대 전쟁 당시 베스파시아누스 밑에서 로마군을 지휘하며 상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신임을 받았다고 하며, 네로 사후 혼란기의 로마를 수습한 [[베스파시아누스]]를 따라 전공을 세웠다. 서기 [[69년]],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 그 역시 이탈리아의 소도시 출신이었다. 그 점에서 그의 배경이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측근이었던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더 - 다양한 출신 배경을 말해준다 - 는 유대인이었다. 속주민을 중앙 정계에 적극적으로 진출시켜 씨를 뿌렸다는 점에서, 베스파시아누스의 선견지명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시대의 필연적인 요청이기도 했겠지만 말이다.]는 자신과 두 아들의 권력 기반을 확대하면서, 네로 시대 동안의 문제[* 재정파탄 외에도 네로의 지나친 그리스계 선호로 지역차별 문제가 나왔으며, 로마 정규군에 지원할 본국(이탈리아) 출신 청년들이 일반군단병보다 여러 부분에서 대우가 좋은 근위대에 지원하거나, 본국의 경제성장 등을 이유로 입대하지 않는 현상이 방치되는 문제도 벌어졌다. 따라서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정규군의 질적 악화 등 각종 현안을 타개해야만 했다.]를 타파할 해결책을 냈다. 이때 황제는 로마군 개방과 라틴권 확대 정책을 추진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능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차원에서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일대의 로마시민권자들에게 로마군 입대 자격을 부여하고, 이 일대에게 라틴권 확대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속주 출신 로마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했다. 그래서 과거 네로 시대와 달리 그동안 소외된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태생 인재들이 대거 중앙정계로 유입되는데, 이 흐름 속에서 본래 원로원 의원이었던 트라야누스의 아버지는 귀족 칭호를 부여받았다.[* 엄연히 원로원에 입성했다고 해도, 원로원 귀족과 기사계급은 세금혜택 등에서 차별이 있었던 터라 트라야누스 아버지가 귀족이 된 것은 그가 플라비우스 왕조의 일등공신인 것을 알려준다고 볼 수 있다.] 트라야누스 부친은 이후 [[집정관]] 직과 [[시리아]] 총독직[* 로마 제국 동방의 최고책임자로, '총독들의 총독'이었다. 유사시 동방의 속주 총독들은 전부 시리아 총독의 명령을 받았다. 다시 말해 정말로 중용되었다.]을 거쳤으며, 시리아 총독 당시에는 파르티아인의 침공을 격퇴하는 공도 세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