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란실바니아 (문단 편집) ===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르데이 공국]]의 성립 === 이 무렵 유럽을 향해 확장을 진행중이던 오스만 제국이 어느덧 발칸반도 대부분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발칸반도의 북부에 위치한 헝가리 역시 오스만 제국과의 전면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1526년 헝가리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국운을 걸고 헝가리 남부 모하치에서 결전을 벌였다. [[모하치 전투]]에서 헝가리군은 국왕 [[러요시 2세]]가 전사하고 주력부대가 괴멸당하는 대참패를 겪었다. 러요시 2세는 후사가 없었고 러요시의 매부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대공(작위)|대공]]인 [[페르디난트 1세]]가 헝가리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헝가리 귀족들 사이에서는 견해가 나뉘었다. 페르디난트 1세의 승계에 반발한 동부 트란실바니아 일대의 귀족들은 서포여이 야노시(Szapolyai János 1487?~1540)를 국왕으로 추대했다. 헝가리 왕국이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통째로 넘어가는 사태를 눈뜨고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던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쉴레이만 1세]]는 칭신을 대가로 야노시를 후원했다. 이렇게 되면서 헝가리 왕국은 북서부의 합스부르크령과 트란실바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로 분열됐다. 즉 하나의 국가에 서로가 적통임을 주장하는 두개의 왕국이 들어선 셈. 여기에 오스만 제국이 직접 점령한 [[부다페스트|부다]] 인근 지역이 [[오스만 헝가리|오스만 제국의 직할령]]이 되면서 [[삼국지|헝가리 왕국은 삼분할되었다.]] 이 중에서 서포여이 야노시가 통치한 헝가리 동부를 현대에는 [[동헝가리 왕국]]이라 부르고 있다. 트란실바니아 역시 동헝가리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1570년, 합스부르크 가문과 동헝가리의 두 궁정은 서포여이 야노시의 아들인 서포여이 야노시 지그몬드(Szapolyai János Zsigmond 1540~1571)가 헝가리 왕위를 포기하는 대가로 트란실바니아 공작의 지위를 인정받는 슈파이어 조약을 체결했다. 공식적인 명목상으로 트란실바니아는 여전히 헝가리 왕국의 일부이기는 했다. 당시 야노시는 트란실바니아 영역 너머 헝가리 동부지역도 통치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트란실바니아 영역은 아니지만 '헝가리 왕국의 일부'(partium regni Hungariae dominus), 즉 파르티움(Partium)이라는 명칭으로 트란실바니아 공작의 통치를 인정하는 식으로 결정되었다. 정리하자면 합스부르크 가문은 헝가리 국왕 칭호를 확보하고 대신 동헝가리 측은 실효지배 중인 지역의 통치를 인정 받았음으로 양측이 명분과 실익을 서로 맞교환했다고 볼 수 있겠다.~~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자 헝가리 왕국의 일부인 트란실바니아 공작이 통치 중인 헝가리 왕국의 일부지역~~ ~~혼란하다~~[*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지역은 아니지만, 트란실바니아 공작의 통치를 받는 지역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 헝가리에서도 루마니아에 넘어간 지역 중 트란실바니아 이외 지역을 파르티움이라 부르고 있다. 다만 어원부터가 ''''[[헝가리]]'''(왕국)의 일부' 이기 때문에 루마니아 측은 역사적 트란실바니아 이외 지역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아니면 그냥 전부다 트란실바니아로 퉁치던가. ||[[파일:트란실바니아 공국.png|width=100%]]|| ||[[트란실바니아 공국]], 1570년[br]{{{#e9dba3 {{{+2 ■}}}}}} 트란실바니아 영역[br]{{{#e2d087 {{{+2 ■}}}}}} 파르티움 || [[헝가리 왕국]]은 세 부분으로 쪼개졌고, 이후 동쪽 부분인 트란실바니아를 중심으로 헝가리 왕국 동부를 점유한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르데이 공국]]은 1570년부터 1711년까지 200년 가까운 기간동안 자치를 누리며 운영되었다. 이 기간 동안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30년 전쟁]]이나 [[대홍수(역사)|대홍수]]에도 참여하는 등 중동부 유럽의 정세에 깊이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헝가리 국왕인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항한 것은 물론, 심지어 ~~명목상 종주국인~~ 오스만 제국과 분쟁을 벌이기도 하는 등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나갔다. 특히 1606년부터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다스렸던 [[보치커이 이슈트반]]부터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는 라코치 지외르지 2세의 무리한 대외 확장 정책의 결과로 끝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