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란실바니아 (문단 편집) === 이중제국 치하 ===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이중 제국]] 성립 이후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 제국 산하의 [[공국]]의 지위를 상실하여 [[헝가리 왕국]]의 영토로 재합병되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헝가리인은 왕국 내 비마자르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강경한 동화정책을 시행했다. 당시의 헝가리는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헝가리 내 다른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민족의 정체성 유지를 걱정할 정도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이중 제국]] 성립 이후 오스트리아에 편입된 민족들이 헝가리에서보다 더 자유로웠다.]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은 제국 내 루마니아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다른 지역들인 [[보이보디나 공국|바나트]], [[부코비나 공국]]과 연대하여 루마니아인의 권리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이중제국 내 루마니아 거주 지역 중에서도 트란실바니아는 가장 규모가 크고 발전되어 있었다. 따라서 19세기 동안 트란실바니아는 자연스레 이중제국 내 루마니아인 민족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헝가리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이 같은 노력의 성과는 지지부진했고, 트란실바니아를 비롯한 이중 제국내 루마니아인들의 불만이 누적되어갔다. 그러던 차에 트란실바니아에 이웃한 [[왈라키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루마니아 왕국]]이 신설되었다. 바로 이웃한 지역에서 동포들이 운영하는 독립국가인 루마니아 왕국이 성립된 사건은 트란실바니아 및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들의 민족의식을 자극했다. 그 결과 트란실바니아 내 루마니아인들 사이에서는 바나트와 부코비나 등 다른 지역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이탈하여 루마니아 왕국에 합류해야한다는 견해가 확산되어갔다. 결국 얼마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민족 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라예보 사건]]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루마니아 왕국은 처음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1916년에 트란실바니아와 그 주변 지역을 [[할양]]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협상국]]측으로 전쟁에 참전하였다. [[동맹국]]에 선전포고를 한 루마니아가 가장 먼저 한일은 당연히(...) [[일본을 공격한다|트란실바니아를 공격한다!]] 였다. 하지만 루마니아 왕국군은 독일의 명장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마켄젠]] [[원수(계급)|원수]]가 지휘하는 동맹국군에게 [[개발살]]이 난 채 트란실바니아에서 쫓겨 났다. 이후에는 오히려 반격을 받아 수도인 [[부쿠레슈티]]가 함락당하고 국토의 반 이상이 동맹국에게 점령당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으로 인해 전쟁은 동맹국의 최종적인 패전으로 종결되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패전의 여파로 제국을 구성하던 소수민족들이 일제히 독립을 선언하면서 붕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