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로이(영화) (문단 편집) ==== 신들의 존재 ==== 영화는 대놓고 직설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 내에서 원전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신들은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을 기려 만든 동상과 조각상들은 숱하게 나오지만, 하물며 [[제우스|벼락이 친다든지]] 하는 신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호한 표현조차 없으며 신들의 이름은 그저 평범한 인간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아폴론]]에게 조국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사제들은 미르미돈 전사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아킬레우스: 태양신은 우리의 적국 트로이를 보우한다. 그의 신전에 있는 보물은 다 차지하거라! > >(환호하며 신전에 뛰어 들어가는 병사들.) > >에우도로스: 한 말씀 올리게 해주십시오, 주군! >아킬레우스: 말하라.[*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던지 해당 대사를 말하는 아킬레우스가 살짝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에우도로스: 아폴론께선 모든 걸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분을 분노하게 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 >(아킬레우스, 묘한 표정을 짓더니 '''단칼에 아폴론의 동상의 목을 쳐버린다.''' 대경실색하며 아킬레우스를 쳐다보는 에우도로스.) > >아킬레우스: 하?(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두드리고 도발하는 아킬레우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아폴론의 동상을 모욕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에우도로스는 신의 분노를 산다면 대가가 따를 것이라며 우려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직접 행동으로 그 말이 참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바로 뒤의 장면에서도, 담겨 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브리세이스: 당신이 아폴론의 사제들을 죽였어. >아킬레우스: 다섯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사제를 죽인 적은 없었다. >브리세이스: 당신의 병사들 짓이겠지! 언젠가 [[아폴론|태양신]]께서 복수하실 거야! >아킬레우스: 그때가 언제지? >브리세이스: 때가 오면! >아킬레우스: 그를 섬기는 사제들이 죽임을 당했고 시종은 포로가 된 신세다. 아마도 신이 날 두려워하는 모양이지. >브리세이스: 두려워해? 아폴론은 태양의 주인이시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아킬레우스: '''그 주인이란 작자는 어디 있지?''' >브리세이스: 살인마 주제에! 신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아킬레우스: 내가 신에 대해서 너보단 잘 알아, '''직접 그들을 봤거든.''' 아킬레우스의 말대로, 평생을 바쳐 자신을 섬기던 사제와 브리세이스가 치욕을 당해도 아폴론은 나서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태양신이 나서야 하는 상황임에도 나서지 않으니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떠는데도 브리세이스는 그저 아킬레우스를 비난할 뿐 아폴론이 왜 나타나지 않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아킬레우스가 말하는 신들을 직접 봤다는 말은 언뜻 보면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고 증언하는 대사일 수도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가장 신들의 존재에 부정적인 아킬레우스가 독실한 신자인 브리세이스한테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자연 현상과 문화, 제도에서 그 기원이 빚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존재를 보고 어째서 저런 게 존재할 수 있는지 과학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시대에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덧붙여져서 만들어진 존재일 것이니.] 브리세이스가 아킬레우스에게 찾아온 프리아모스 왕과 함께 트로이로 돌아간 이후, 트로이 목마로 인해 성이 함락되고 있을 때 브리세이스는 아폴론 조각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 아폴론이 트로이를 구원하길 바라며 올린 기도겠지만, 아무런 기적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녀를 겁탈하려는 아가멤논만이 찾아온다. 브리세이스가 머리카락을 잡혀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때도 아폴론을 비롯한 신들의 개입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브리세이스가 결국 스스로 칼을 꺼내 아가멤논의 목을 찔렀을 뿐이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더욱 흥미롭다. 아가멤논의 죽음에 분노한 병사들이 브리세이스를 죽이려 할 때, '''아폴론 동상의 목을 베어버린 아킬레우스'''가 나타나 병사들을 죽이고 브리세이스를 구해낸다. 결국 수호신 아폴론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신성모독]]적인 태도를 고수한 인간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를 구원하는 심히 아이러니한 결말을 맞은 것이다. 실제로 니체의 명언 [[신은 죽었다]]의 경우, 실제 종교 관련 발언이라기보단 인류가 따라야 할 절대적인 가치가 더 이상 없다는 비유법이다. '난 신을 봤다'는 아킬레우스의 발언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경우, '너희들이 신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죽음이나 전쟁, 승리를 나는 충분히 경험해왔다. 그런 것들은 신의 의지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일 뿐이다. 신 따위는 없다'는 종교 근본주의나 종교 극단주의를 부정하며 지성주의를 촉구하는 일종의 계몽적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예언에 따라 전쟁 전략을 짜거나, 브리세이스는 성문이 열리고 그리스 군이 몰려들어오는데도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게 아니라 신전에 가서 기도를 하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독실한 신앙과 구분되는 [[근본주의]]는 종교적 교리가 유일무이한 절대적 진리라고 믿으며, 극단주의는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무조건 그 신앙에 입각해 사고한다. 저 두 사람은 이 두 가지가 혼용된 모습을 보이는데, 프리아모스의 떨어지는 현실감각으로 인해 트로이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으니 그의 훌륭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암군으로 볼 수 밖에 없으며, 브리세이스는 전쟁의 가엾은 희생자란 것과 별개로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며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것이다. 아폴론이 수호신인 트로이 왕국의 왕자, 헥토르도 신들의 실존 여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는 언제나 가정과 고향의 평화, 조화, 조국의 번영을 진정 가치있는 일로 삼을 뿐 사사건건 신들의 징조와 계시에 집착하는 사제들과 대립한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헥토르는 자칫 취하기 쉬운 신과 기적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무력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전란에 휘말린 트로이를 지켜내고자 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신들의 존재는 그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제들이 신들의 존재에 집착하고 있을 때도 헥토르는 직접 전장에서 아킬레우스가 목을 따버린 아폴론의 동상에 대해 말하며 신들의 개입은 없을 거라고 잘라서 말한다. 언뜻 보면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이니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폴론만 바라보며 독실하게 수호신으로 섬기던 트로이가 위험에 처했는데 개입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는 점에서 헥토르가 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헥토르가 무신론자이거나 신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보긴 어려운 게, 전투 전 병사들에게 연설할 때 "나는 평생 세 가지 원칙을 지녀왔다. 신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자신의 여자를 사랑하고, 조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기본적인 신앙심은 있다. 즉 현대인들이 종교가 있어도 '신이 다 해주실 것'이라 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하듯이, 신이란 존재에게 의지하는 프리아모스나 사제들과 반대로 신앙심은 있되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현실주의''' 신앙심이라고 볼 수 있다. 작중 제일 신앙이 깊은 이로 그려지는 것은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다. 아폴론에게 기도하는 장면도 나오며 그의 인생 모든 언행과 사건을 신의 뜻과 연결지어 판단하는 꽤나 광신적인 모습을 보인다. 헥토르가 어렸던 시절 심한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나들자 아폴론에게 기도했더니 치유됐다고 회상하며, 대제사장 아르케프톨레머스가 가뭄을 예언한 덕분에 미리 우물을 파 식수가 고갈되는 일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저 헥토르가 운이 좋아서 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을 아폴론의 덕으로 돌리며, 가뭄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가뭄을 예언했는데 때마침 가뭄이 온 것을 예언이 적중했다고 믿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 결투하러 가기 전 신들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그다운 격려를 하지만, 헥토르는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전차에 매달려 시신이 질질 끌려다니는 치욕을 겪었다. 그럼에도, 프리아모스는 그리스군이 숨어 있는 목마를 낌새가 좋지 않으니 불태워야 한다는 파리스의 간언을 무시하고 신의 제물에 손상을 입힐 수는 없고 트로이 안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사제의 말을 듣는다. 목마 안에서 튀어나온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젖혀 결국 트로이가 함락되고 백성들이 도륙당하는 참극속에서 그는 약탈당하고 무너지고 있는 신들의 동상 앞에서 아가멤논에게 창으로 등을 찔려 사망한다. 영화는 프리아모스를 '''미신에 시선을 빼앗겨 현실을 보지 못한 [[암군]]'''으로 표현한다. 직접 전장에 나가서 목숨 걸고 싸우는 헥토르의 전략적이고 깊이 있는 조언보다는 징조와 계시라는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사제들의 조언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해서 이득을 본 것은 없었다. 사제들은 예언이라는 팔자 좋은 짓을 하고 그저 신전에서 편히 쉬고 있었음에도 정작 상처 입고 죽어가는 전우들과 함께 힘겹게 쟁취해온 헥토르의 승리를 자신들의 공으로 돌린다. 프리아모스도 회의 중에 사제들을 못마땅해하는 헥토르를 제지시키고 사제들이 승리를 예언했고 그게 적중했으니 경청하라고 명령한다. 또 [[오디세우스]]를 보면 그는 약소국인 [[이타카]]의 왕으로 어쩔 수 없이 [[아가멤논]]에게 조아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독하게도 현실적이며 정치와 처세술, 권력을 중요시하는 신화에서도 보기 힘든 유형의 인물이다. 이 점은 원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농담하기를 좋아하며 병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노련한 용병술과 통찰력을 지닌 그는 영화 내에서 신들을 입에 담지도 않으며 그저 현실에만 시선을 둔 채 결코 거두지 않는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를 봉합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이도 오디세우스이다. 결정적으로, 오디세우스는 병사들과 함께 쉬다가 한 병사가 말 모양 나무 인형을 조각하는 것을 보고 '''[[트로이 목마]]''' 계책을 만들어낸다. 10년이 걸려도 역부족이라는 트로이 공성전을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에 그리스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맺음한 것은 그의 천재적인 지략과 창의력이다.[* 더 곰곰히 생각해보자면 프리아모스와 사제들이 광신적이였기에 성공한 계책이기도 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명분으로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으니, 만약 프리아모스와 사제들이 조금만 더 이성적이고 철두철미했다면 목마는 그냥 거대한 화장용 장작더미였을 것이다.] 신의 도움과 기적을 바라며 도움도 되지 않는 사제들에게 힘을 실어줬던 프리아모스와는 달리 오디세우스는 그저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가며 아군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수없이 많은 장례식 장면의 마지막,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눕힌 장작 더미에 불을 놓는 사람은 오디세우스이다. 즉 신과 영광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무런 집착도 갖지 않고, 그저 현실에만 집중한 오디세우스가 최후의 승리자가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이렇듯이, 신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다. 영화는 명예욕과 권력욕, 애국심, 사랑과 증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신들의 도움이나 기적은 없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이 힘겹게 인생을 살아가며 담긴 비극만이 있을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