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문단 편집) === 현대 === [[파일:1939 트리폴리.jpg|width=700]] 1930년대 엽서 사진. 구시가지의 성벽 1943년 1월 이집트 주둔 영국군이 도시에 진주하였다. 전후 1947년 이탈리아는 리비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고, 1951년 영국으로부터 [[리비아 왕국]]이 독립하자 타라불루스는 그 공식 수도가 되었다. 다만 실질적인 수도의 지위는 벵가지와 [[베이다]]가 맡고 있었다. 1969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쿠데타 이후 타라불루스는 다시 리비아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독재와 반서방 정책은 때때로 미국의 공습으로 이어졌다. 1986년 4월 엘도라도 캐년 작전에선 15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중엔 카다피의 양녀 한나도 있었다. [[파일:external/photo.sf.co.ua/9.jpg]] ||[[파일:external/c2.staticflickr.com/2629096524_7a400bb5b4_b.jpg|width=500]]||[[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ripoli_Panorama.jpg|width=440]]|| ||[[파일:external/www.libyaholdings.com/5.jpg|width=500]]||[[파일:external/static.panoramio.com/638475.jpg|width=480]]|| 현대의 트리폴리 [[2011년]] [[리비아 혁명]] 당시 카다피는 시민군을 폭격했다가 [[NATO]]군에 의해 [[오디세이 새벽 작전|공습을 받았다]]. 결국 시민군이 타라불루스를 점령했고, 카다피는 남은 정부군 잔당을 이끌고 싸우다 죽었다. 다만 그후 트리폴리의 [[국가협의정부]]와 [[대표자 의회]] 두 정부 간의 동서 갈등으로 [[2차 리비아 내전]]이 발발했고, 2019년 동부 군대가 도시를 점령할 뻔 했으나 정부군이 반격에 성공하였다. 그러다 2021년 들어서야 동서 통합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치러진다고 한다. 따라서 10여 년간 전란에 시달린 타라불루스에도 희망의 빛줄기가 드리우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