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문단 편집) === 중세 (타라불루스) === ||[[파일:트리폴리 사원 2.jpg|width=700]]||[[파일:트리폴리 사원 1.jpg|width=390]]|| 10세기에 처음 세워진 앗 나가 사원. 1610년 보수를 거쳤지만 옛 기둥은 그대로이다. 9세기 중반 압바스 조의 쇠퇴와 함께 이슬람권 각지에는 독립 왕조들이 세워졌고, 기존 제후국들도 자립하였다. 그중 하나인 이집트의 [[툴룬 왕조]]의 태자 압바스가 부왕 아흐마드의 부재를 틈타 독단적으로 아글라브 조를 침공[* 부친의 허가도 없이 감행. 침공 직전 바르카에서 스스로 압바스 칼리파로부터 이브라힘 2세의 폐위가 하달되었고 (놀랍게도 이는 23년 후 실현됨) 및 자신이 이프리키야 총독으로 봉해졌다고 주장했으나 묵살되자 진군함], 879년 총독 무함마드 이븐 쿠르훕을 축출하고 타라불루스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그 배후의 나푸사 산지에서 웅거하던 이바디 베르베르 인들이 880년 남하하여 툴룬 군대를 격파하였고, 그 틈에 아글라브 조의 아미르 이브라힘 2세는 도시를 수복할 수 있었다.[* 또한 패주한 툴룬 군대의 보급품으로부터 큰 약탈물을 얻음] 896년 압바스의 사망과 함께 반격에 나선 이브라힘 2세는 타라불루스에 이르러 압바스 조와의 친분을 이유로 그 총독 무함마드를 처형하였다. 이후 그는 나푸사 산지의 이바디 세력을 절멸시키고 바르카 바로 아래의 아즈다비야까지의 국경을 확립한 후 회군하였다.[* 잔인함으로 악명이 높았던 그는 나푸사 산지의 이바디 포로들을 자신의 왕좌 앞에 늘어세워 한명 한명 직접 창으로 찔러 죽였는데, 그런 식을 5백여 명이 살해된 후에야 아미르가 피곤함을 느낌으로써 이 기행은 끝이 났다. 아즈다비야에서 그는 적 15명의 머리를 요리해 먹는 기행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글라브 조는 이미 쉬아 베르베르 반란으로 쇠약해졌고, 결국 909년 그로 인해 멸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