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트/역사 (문단 편집) == 분열시대 및 몽골, 원의 통치 == [[파일:Tibetischer_Kulturraum_Karte.png]] 분열기 동안 남아시아로 떨어져 나간 티벳 문명권 지역들은 [[라다크]], [[시킴]], [[부탄]], [[무스탕]] 등이 있다. 그 후 티베트는 다른 민족들에게 [[중앙아시아]] 지역을 빼앗겼으며, 토착종교 [[뵌교]]와 외래 종교 [[불교]] 간의 대립, [[불교]] 내의 파벌 간 다툼과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분으로 인해 조각조각 나뉜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티베트는 분열하여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리며 주변 강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이때부터 장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몽골과 티베트의 첫 조우는 1236년인데, 당시 소규모 부족의 족장이 몽골에게 투항하고 금나라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기록이 시작된다. 1240년, [[몽골 제국]]은 티베트를 제압하기 위해 항복한 탕구트 계열 장군에게 30,000명의 군사를 준 뒤 티베트를 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인 까담빠 종파의 절 2개가 불에 타고 승려들이 학살당하는 등, 잔인한 결과가 많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세력 하나하나가 작아서 그런지 몽골의 다른 전쟁들보다는 훨씬 덜 피 튀기는 싸움이었다. 티베트를 완전히 흡수한 뒤 종교 지도자를 대리 통치인으로 선택해 [[티베트 불교]] '''사캬파'''(홍모파)의 사캬틴진을 식민 정책의 동반자로 삼았다. 홍모파의 승려 [[파스파]][* [[티베트어]] 원어로는 '팍빠'라고 읽는다.]는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샤머니즘, 경교, 이슬람 등 온갖 종교가 각축을 벌이던 몽골에 티베트 불교를 전파하였다. [[쿠빌라이 칸]]은 [[전륜성왕]]의 칭호를 헌상받았다. 또한 고려와 같이 티베트는 원나라의 속국이긴 했지만 자치를 하는 등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