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트/역사 (문단 편집) == [[중국]]의 병탄과 통치 ==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2차 대전]] 종전 후 [[영국]]이 [[인도]]를 상실하고,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자 상황은 달라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국의 티베트 침공]] 문서 참조. 중국 정부와 달라이 라마 측은 몇 차례의 협상을 해서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타협하게 된다. 이것을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위한 17조 협의'라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Seventeen_Point_Agreement_for_the_Peaceful_Liberation_of_Tibet|위키백과의 17조 협의 항목]] 이것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 같았고, [[1950년대]]에 달라이 라마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티베트 대표로 [[베이징]]을 방문하여 몇 차례 [[마오쩌둥]]과 만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매우 우호적이었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2345935|달라이 라마는 마오쩌둥이 자신을 아들처럼 대했다고 회고했다.]] 마오쩌둥은 달라이 라마 면전에 대고 티베트 불교의 문제점을 이야기 했으나, 달라이 라마의 회고록에 의하면 달라이 라마는 마오쩌둥이 자신과 그만큼 친하기에 그런 말을 자신의 면전에서 한 거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파일:attachment/dalai.jpg]] 1954년 [[베이징]]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가운데가 [[마오쩌둥]], 왼쪽이 [[판첸 라마 10세]], 오른쪽이 [[달라이 라마 14세]]. 그러나 차근차근 반종교정책, [[토지개혁]],과 같은 공산화 정책이 시행되자 기득권인 [[승려]]와 귀족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나서 이 지역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1958년]]에서 중국 전역에서 [[대약진운동]]이 야기한 대기근이 발생하자 원래부터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티베트의 [[반중]] 감정은 폭발하게 되었다. [[1959년]] 이곳에서는 반중봉기가 일어났고, 이 봉기를 [[중국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많은 티베트족들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 북부, [[네팔]] 등지로 망명을 떠났다. [[달라이 라마 14세]]와 티베트 내각은 티베트 내에서의 [[독립운동]]의 가능성과 달라이 라마 14세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북인도 [[히마찰프라데시]] 주(州)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실시한 정책은 반종교 정책이었다. 특히 주요 대상이 된 것은 티베트인들을 이끄는 지도자인 '''[[승려]]'''들이었다. 티베트인 대다수가 신봉하는 티베트불교의 승려들은 승직을 박탈당하고 노동 부대로 강제 편입되었다. 처형된 승려도 많았다. 그래서 수많은 승려들이 강제로 [[환속]]당했다. 아예 '''민중들 앞에서 알몸으로 남녀 승려(비구/[[비구니]]) 및 민간인 남녀 간의 [[성행위]]를 강제로 시키고 [[출산]]을 확인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더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불교 자체를 탄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항의하는 승려들은 반역자로 간주되어 처형되었다. 이에 수많은 승려들이 탄압을 피하여 [[인도]]로 망명을 떠났다. <티베트에서의 7년>, <쿤둔>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렵, 벌목, 채광 같은 일들을 금기시하여 티베트의 자연환경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곳에서 [[금]], [[석탄]], [[우라늄]]과 같은 천연 자원을 캐기 위해 자연환경을 ~~파괴~~ 개발했다. 또한 [[표범]], [[곰]]과 같은 짐승들을 남획했는데 이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여, 현재는 [[중국 정부]]에서 멸종 위기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는 3,700개에 달하던 사찰 중 [[라싸]] 주변과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동티베트의 13개 사찰만 남고 모조리 파괴되거나 [[감옥]], [[창고]]와 같은 곳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티베트어로 된 경전이나 [[불상]], [[탱화]] 같은 종교적 성물은 물론 티베트 전통의상, 신발 같은 공예품들은 대부분 압수 또는 소각당했다. 그리고 대부분 외국의 박물관(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으로 팔려나갔다.(…) 또한 뵌교도들도 사당이 부숴지는 등 문화대혁명의 파괴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근년부터 중국이 티베트에 은근슬쩍 [[방사능 폐기물]]을 몰래 버리는 탓에 티베트족들이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는 언급도 보인다. 실제로 중국은 1960~70년대 과거 티베트의 영토였던 칭하이 서부 초원에 원자성(原子城)이라는 커다란 핵 연구소를 지어 놓고 수 차례에 걸쳐 지하 핵실험을 벌인 적 있어[* 현재 그 원자성 폐허 일부는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어 있다.(...)]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이 원주민 보호구역에서도 안했던 짓거리다~~ 그리고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429337|2006년 10월에 벌어졌던 난민 총격 사건]]이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3410907|2010년 8월에 벌어진 시위자에 대한 총격]], [[http://www.hani.co.kr/section-021005000/2007/09/021005000200709130677008.html|그 외의 여러가지 사건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죽의 장막 밑에서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는 하나 여러 '티베트 인권단체'들의 보고에 따르면 중국군에 의한 약탈 비구승들에 대한 집단강간 등등 수많은 악행이 자행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기존 백서에 있던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조차 2019년 백서에 삭제되고 왜곡된 티베트 시선을 자화자찬 할 뿐이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0725048|#]] 티베트 유일의 프로축구팀이 중국 정부에 의해 해산된 일이 발생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23&aid=0003537662|#]] 티베트에서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신장 재교육 캠프]]와 비슷한 강제 노동·교화 프로그램을 중국 정부가 확대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32&aid=0003033990|#]][* [[신장 재교육 캠프]] 문서를 읽으면 알겠지만 신장 자치구의 총책임자 중 한 명이 신장에 오기 전에 티베트에 있었던 자이다.] 2023년에 쓰촨성 내 티베트 자치구에서 티베트어 말살 시도 중이다.[[https://m.yna.co.kr/view/AKR20231018143500074?section=international/all|#]] [각주] [[분류:티베트의 역사]]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티베트, version=86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