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나리오테스 (문단 편집) == 개요 == 파나리[* [[그리스어]]로 등대라는 뜻이다.] 사람, 즉 파나리오테스 또는 파나리오치([[그리스어]]: Φαναριώτες, [[루마니아어]]: Fanarioţi, [[불가리아어]]: Фанариот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요 그리스인 지역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있는 파나르 지구(Φαναρι, 현재 페네르(Fener))에 거주하는 주로 [[그리스인]] 가문[* 그리스화된 [[루마니아인]]과 [[알바니아인]] 포함.]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16세기]] 후반에 부유한 그리스인 [[상인]] 계층[* 보통 자신을 [[동로마 제국]] [[귀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에서 출현하였으며 [[18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함에 따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제도]] 하에서 제국 내 정교회 신도들(룸 밀레트, "[[로마인|로마 민족]]")의 종교적 권위와 함께 세속적 권위(millet-bashi)를 모두 가진 파나리 지구의 총대주교 궁전 근처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때때로 총대주교 관구의 아르혼티스(교회의 권익을 보호하는 임무를 받은 평신도)들처럼 행세하기도 했다. 따라서 총대주교 관구의 행정을 지배하게 되었고 때때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의 선출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 가문들의 몇몇 구성원은 [[17세기]]에 이미 오스만 제국의 정책과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의 고위직을 담당하여 거대한 부와 영향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1669년부터 그리스 독립 전쟁이 발발한 1821년까지 그리스인들의 교육 수준이 제국을 구성하는 여타 민족에 비해 높았기 때문에 주로 오스만 정부에서 드라고만(dragomans;중동인과 유럽인 사이의 통역사)으로 일라거나 대사관(embassies)으로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의 성직자나 지역 유지, 대상인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스 독립 전쟁]] 발발 이전까지 오스만 통치기간 동안 보다 나은 교육을 받은 그리스인 계급을 대표하였다. 독립 전쟁 동안 파나리오테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총 6번 열렸던 그리스 혁명기의 대표 기구인 그리스 의회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1711년~1716년부터 1821년까지 그들 중 상당수는 외교관(Dragoman)으로서의 봉직에 대한 보상으로 도나우 공국([[몰다비아 공국]]와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Hospodar; [[보이보드]] 혹은 공)직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루마니아 역사에서는 이 기간을 보통 '파나리오치 시대'라고 부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