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인애플 (문단 편집) == 역사 ==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북부 원산으로 그곳에서는 오래 전부터 재배했다. [[포르투갈]], [[스페인]]의 정복 전쟁을 통해 세계 각지에 퍼졌다. [[루이 14세]]가 껍질도 안 벗기고 손으로 집어먹었다가 혀를 다쳐 분노한 나머지 이 과일을 먹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처음 유럽에 소개된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으로 가져 왔을 때이다.(1493년) 당시 스페인 왕실과 귀족들이 이를 나눠 먹어보고 너무나 달고 맛있다며 유럽에서 재배를 시도했으나 유럽의 기후에서는 파인애플이 자라지 않았기에 실패. [[대서양]]을 건너 배로 수송하는 수 밖에 없었으며, 당연히 엄청난 고가품이었다. 남미에서 유럽까지 운송하기 위해서는 더운 적도를 지나야 했고, 시간도 아주 오래 걸렸기 때문에 배에 파인애플을 한가득 싣고 항해해도 유럽에 도착할 때쯤이면 다 썩어버리고 한두 개 정도만 멀쩡했다고 한다. 즉, 파인애플 한 개를 위해 배 한 척을 띄워 남미까지 갔다 와야하는 상황이었던 것. 게다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거나, 해적에 약탈당하거나 운이 없어 조난당하는 배들도 많던 시절이기 때문에 파인애플의 가격은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때문에 이 당시 파인애플은 왕족이나 귀족들조차도 엄청난 가격 때문에 함부로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진귀한 과일이었다. 어쩌다가 파인애플을 하나 구하면 먹는 것이 아니라 파티가 열리는 홀 중앙에 놓아둬서 재력을 과시하는 '''장식품'''으로 사용했으며, 그렇게 장식용으로 계속 쓰다가 썩기 시작해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17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몇몇 업자들이 온실 재배에 성공해, 그나마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허나 공급량이 적은데다 수요가 높아 남미에서 싣고 오던 시절에 비해 가격이 크게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고가품이었으며(대략 지금 돈으로 하나에 8,000달러 정도), 귀족들조차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파인애플은 부의 상징이었으며, 전신 초상화를 그릴 때 파인애플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유행이었다(예:[[https://www.royalcollection.org.uk/collection/406896/charles-ii-presented-with-a-pineapple|파인애플을 받는 찰스 2세]]). 심지어 18세기에 지어진, [[비키니시티/시설#s-2.4|파인애플 조형물을 얹은]] [[https://en.m.wikipedia.org/wiki/Dunmore_Pineapple|석조 저택]]도 있다. 귀족들은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파인애플을 옆구리에 하나 끼고 돌아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으며, 현재의 명품 핸드백 대여업처럼 파인애플을 대략 현재 돈으로 1,000달러 정도에 '''딱 하루''' 대여해주는 업체도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3-uKgiyE3Y|파인애플의 역사에 대해 다룬 영상(영어)]] 그 후 무역이나 유통도 활발해지고 기술의 발달로 품종 개량과 재배법 향상으로 가격은 점점 내림 추세였지만 저렇게 귀하고 사치품으로 쓰이던 과일이 지금처럼 값싸고 맛있는 과일로 대중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19세기 경 [[미국]] [[하와이]]에서 [[플랜테이션]] 작물로써 통조림 등의 상품화 성공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기업형으로 대량재배를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