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소리 (문단 편집) == 관련인물 == * [[신재효]](1812~1884):12마당이 전해지던 판소리를 남녀와의 관계를 다루고 야하다는 이유로 조선의 유교적 입장에 맞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변강쇠가, 수궁가 6마당으로 정리한 인물. * [[김소희(판소리)|김소희]](1917~1995): 근대 국창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여류 명창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전라북도 고창 출신. 호는 만정(晚汀). * 김연수(1907~1974): 국립창극단 초대 예술감독.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 호는 동초. 20세기까지의 여러 소릿제의 장점을 취합하고 논리에 맞게 사설을 수정한 동초제 판소리 5바탕을 정립했다. 지금도 [[이일주]]를 매개로 한 여러 제자들로 하여금 동초제라는 유파는 동편제, 서편제, 강산제를 이어 독립적인 유파로 인정받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많은 전수자들이 활발히 전승하고 있다. 개인으로는 최초로 판소리 5바탕의 완창 녹음을 수행한 바 있다. 동아방송에서 방송용으로 녹음된 이 음원은 후일 제자들에 의해서 음반으로 출반되었다. 당대에는 임방울과 라이벌로 꼽혔다고 한다. 소리 뿐만 아니라 판소리 사설에 관한 이론적 지식에도 상당히 해박해서 많은 소리꾼들이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송순섭은 소리 유파는 박봉술제 동편 소리를 구사하고 있으나 사설 붙임이나, 교정 등은 김연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증언했다. * [[박녹주]](1906~1979):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흥보가> 예능보유자. 구미 출신으로 주로 호남 출신이 많은 판소리계에서 드문 영남 출신의 소리꾼이었다. 여성명창임에도 남성적이고 꿋꿋한 소릿제를 보유하고 있었다. 소설가 김유정이 맹목적으로 짝사랑(이라 쓰고 스토킹이라 읽는)했던 상대이기도 하다. 2002년에 작고한 인간문화재 한농선 명창과 2016년에 작고한 인간문화재 박송희 명창이 직계 제자이며 박녹주제 흥보가는 지금도 흥보가 중 가장 많이 불리는 흥보가 유파이다. * [[박동진(국악인)|박동진]](1916~2003):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충청남도 공주 출신. 판소리 완창의 대명사. 박동진 전에는 사실상 판소리 무대가 토막소리(판소리의 눈대목이나 일부 부분만 부르는 것) 위주였으나 박동진 이후로 판소리 완창 붐이 불었다. 김연수에 이은 국립창극단 제2대 예술감독이며, 특히 즉흥에서 선보이는 작창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나이가 들어서는 항상 메인 소리를 하긴 전 단가를 할 때 기존에 있던 단가가 아니라 즉석에서 작창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나 메시지를 작창으로 4~5분 동안 불렀다. 판소리의 해학적, 풍자적 요소를 상당히 잘 구사했으며 무대에서 욕도 걸쭉하게 잘했고 이이 대한 것도 청중들이 전혀 불쾌하지 않게 보았다. 즉 판소리 명창, 소리꾼 보다 광대라는 칭호가 정말 잘 어울렸던 인물이다. 그렇다고 소리 실력이 나쁜 것도 아니고 본연의 소리 성음도 좋다. 이 밖에 변강쇠가까지 포함한 판소리 6바탕을 언제 어디서든 완창이 가능했으며 창작판소리도 가끔 선보였다. * 박봉술(1922∼1989):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동편제의 본좌급으로 평가받는 인물.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를 계승한 흥보가, 적벽가로 유명했다. 타고난 목구성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이를 극복하고 본인만의 독보적인 성음을 갖게 되었다. 판소리 음반 중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브리태니커 판소리 다섯 마당에서 무려 두 바탕(흥보가, 수궁가)을 박봉술이 녹음 하였다. 이외에 춘향가, 심청가도 전승이 끊긴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였던 백대웅이 개인적으로 녹음했던 박봉술의 춘향가와 심청가 녹음이 전남대학교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를 복원해서 박봉술 바디 동편제 춘향가와 심청가가 음반으로 발매 되었다. 제자로 송순섭, 김일구 명창이 대표적이며 왕기석, 왕기철 등 80년대 국립창극단의 스타들 역시 그에게서 적벽가를 배웠다. * 박초월(1917~1983):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높은 고음과 애원조의 소리로 유명했다. 동갑내기인 김소희와 함께 당대 여성명창의 대명사로 불렸다. * [[송만갑]](1865∼1939): 조선 고종 때부터 일제 때까지 활약한 판소리 명창. 당시 다섯 명창[* 나머지는 정정렬, 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중의 한 사람이었다. * [[신영희(판소리)|신영희]](1942~): 국가무형문화재[* 2016년 3월 28일자로 중요무형문화재에서 명칭이 변경되었다.] 제5호 판소리 <[[춘향가]]>(만정제) 예능보유자. 김소희, 박록주, 박초월 명창이 1세대 명창이라면 성우향, 성창순, 남해성, 박송희, 오정숙, 한농선 등과 함께 2세대 마지막 여류명창으로 평가받는다. 흔히 남성적 소리라 지칭되는 통성(배 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목소리)과 수리성(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한 음색의 성음)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대명창이다. 과거 인기 개그코너였던 '쓰리랑 부부'에 출연하여 김미화, 김한국 등과 함께 판소리를 넣어 콩트를 진행하였는데 이는 이후 판소리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소희의 수제자로서 2013년에 김소희의 뒤를 이어 <춘향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안향련(1944∼1981): 한때 스승인 김소희가 생전에 "제자들 중 유일하게 일찍이 나를 뛰어넘은 인물" 라고 극찬할 만큼 뛰어난 명창으로 꼽혔으며 [[창극]]의 주역을 도맡아 했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었으면 지금 활동하는 여러 명창들보다도 가히 압도적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 정도라고 평가받는 여류 명창이다. 하지만 화가였던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이로 인해 자살로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하게 된다. 지금도 그나마 남아있는 젊은 시절 녹음한 안향련의 심청가 음반은 판소리 음반을 거론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명반으로 꼽힌다. * 오정숙(1935~2008):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동초제) 예능보유자. 김연수의 수제자이며, 여성명창으로는 최초로 5바탕을 모두 완창했고, 김연수의 뒤를 이어 5바탕의 완창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5바탕을 모두 녹음한 명창은 김연수, 오정숙, [[이일주]] 등 3사람뿐이다. 그나마 김연수는 동아방송 방송용 녹음을 남긴 것이 후대에 음반으로 발표된 것이고 5바탕 완창을 음반으로 취입한 사례로는 오정숙이 가장 최초에 해당한다.] 음성이 또랑또랑하고 맑은데다 발음이 분명하고 연기도 뛰어나 [[창극]]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월매 역할은 전매 특허라고 할 만큼 뛰어나다. 그야말로 20세기 중후반 월매 연기의 스페셜리스트. * [[임방울]](1904~1961): 당연히 본명은 아니고 본명은 임승근이다. 일제강점기~해방 직후까지 판소리의 아이콘. 광주 출신으로 '쑥대머리'가 유명.[*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현행 '쑥대머리'는 그가 장단을 정하고 새로 짠 소리다. 즉 그의 '더늠'. 원래 '쑥대머리' 사설 자체는 김창환 계열 춘향가에 있었다고 하는데, 임방울이 김창환의 제자 정광수에게 사설을 받아서 소리를 새로 짰다고 한다(정광수 증언).]원래 유성준의 제자였으나 사소한 일로 유성준 문하를 나와서 이후로는 독공으로만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판소리에서 최고의 성음으로 평가받는 수리성과, 천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쑥대머리가 워낙 유명하지만 정작 그 특기는 수궁가와 적벽가.[* 제자들은 물론 관련 인사들의 증언도 그렇고 그의 녹음 중에 춘향가보다 수궁가와 적벽가 쪽이 더 많기도 하다. 아예 해방 직후에 가졌던 몇 차례의 완창이 모두 적벽가와 수궁가이기도 했고.] 음반도 춘향가는 쑥대머리와 몇몇 토막소리만 녹음으로 남아있지만 적벽가와 수궁가는 완창 녹음이 존재한다. 이 밖에 부인이 죽자 무덤 앞에서 작창으로 부른 "추억" 이란 곡이 유명하다. 현재 광주에서 그를 기념한 임방울 국악제가 열린다.[[http://www.imbangul.or.kr/index.htm|#]] 여담으로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일반부, 명창부 부분에서는 본 소리를 하기 전에 임방울을 기리는 의미에서 쑥대머리와, 추억 중 한 곡을 단가로 부르도록 하고 있다. * [[안숙선]](1949~): 우리시대 최고의 소리꾼,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영원한 춘향으로 불리며 국내외 수많은 공연 활동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극찬과 수상을 통해 전통예술인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명창으로 평가 받고 있다. 판소리 명창들이 대부분 한 가지 유파를 깊게 공부하는 반면 안숙선은 5바탕 완창이 가능한데도 이 5바탕의 유파가 모두 다르다. 춘향가는 만정 김소희제, 심청가는 성우향의 강산제, 흥보가는 김소희의 만정제와 강도근의 강도근제, 오정숙의 동초제, 수궁가는 정광수의 유성준제, 적벽가는 박봉술의 박봉술제. 그만큼 당대 최고의 명창들을 사사했고 피나는 노력으로 각 유파의 소리를 특징별로 모두 익힌 뛰어난 명창이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으며 판소리 뿐만 아니라 가야금 병창, 창극 등의 다른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룬 예인이다. * 임진택(1950~): [[전라북도]] [[김제시|김제]] 출신. 창작 판소리의 대가. 군사독재 시절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되었다가 [[불기소처분]]되어 풀려난 적이 있으며, [[김지하]]와 더불어 만든 오적, 똥바다 등 창작판소리 작품으로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출신으로 원래 소리꾼은 아니었지만 후에 보성소리 정권진에게 소리를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적 의미가 있는 창작판소리 활동을 많이 하였다. * 조상현(1939~): 전라남도 보성 출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의 예능보유자였으나 대회에서의 금품수수 비리로 인해 박탈되었다. 풍채가 좋은 데다가 목이 기가 막혀서 [[창극]] 무대에서의 주역으로 자주 활동했으며 남성 명창으로서는 드물게 춘향가를 완창 녹음한 것.[* 지금 현재까지 남성 명창으로 춘향가의 완창 음반을 취입했던 사람은 조상현 외에 은희진과 전인삼뿐이다. 김연수와 박봉술도 완창 녹음을 한적이 있지만 음반으로 취입하지는 않았고, 대신 후일 제자들에 의해 CD로 복각되어 출반된 적은 있다.]이 음반이 그 유명한 브리태니커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 춘향가 음반이고 영화 춘향전에 이 음반이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현재 80이 넘는 나이에도 아직까지 무대에 서면 엄청난 성량과 목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생존해 있는 명창 중에는 가히 넘사벽급 인물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떨어지고 목도 많이 안 좋아지는 게 사실이지만 조상현은 오죽하면 이게 거꾸로 가고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들릴 정도. 하지만 그래도 나이는 나이인지 현재 완창은 하지 않고 있다. 보성소리 정응민의 문하로 여기서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를 배웠다. 이 세 개가 주요 레퍼토리지만 5바탕 모두 완창이 가능하다. 흥보가는 박녹주에게 배웠고[* 하여 흥보가가 박봉술제와 다르게 이때춘절 대목이 끝이다.] 적벽가는 박봉술에게 배웠다. * 조통달(1945~): [[전라북도]] [[익산시|익산]] 출신, 가수 [[조관우]]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명창. 그의 이모 또한 명창으로 유명한 박초월(1917-1983)이다.[* 아예 양어머니로 모셨다고.] 과거에는 [[남진]], [[이선희]] 등 내로라 하는 가수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그 외에도 IMF 시절 최연소 흥보가 완창 기록을 세운 유태평양의 스승이기도 하다. 대중가수인 아들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저런 방송에서 출연이 잦은 편이라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본명은 조동규이다. 하지만 본인은 본명으로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일례로 대회 심사를 나갔는데 심사위원 팻말에 본명인 조동규로 적어놓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 [[최창규(군인)|최창규]](1961~): [[강원도]] [[횡성군]] 출신. [[육군3사관학교]] 19기 출신 장군으로 [[제35보병사단]]장 및 [[육군포병학교]]장 시절 직할대 간부·용사들과 함께 여가시간을 활용하여 판소리를 즐기는 장군으로 유명하였다. 심지어 [[기네스북]] 도전을 목표로 하였다고 하며, 판소리는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강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