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잣집 (문단 편집) == 서울의 판자촌 역사 == [[서울특별시]]의 판자촌은 현재의 남산 갈월동 일대와 명동 뒤편으로 넓게 퍼져 있었고 [[청계천]]에도 청계 8~9가까지 이들 판잣집이 어지러이 얽혀있었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들며 이들의 규모는 아현, 미아리, 용산까지 넓어져 산으로 올라가 '[[달동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되었으며[* 실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 [[동양방송|TBC]]에서 방영한 동명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판잣집 집락촌이 많이 늘어났다. 대부분 이런 곳에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동네가 많다. 이렇게 우후죽순 들어서고 규모가 커지던 서울의 판자촌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서울역]] 맞은편 양동(현재 남대문로5가), 도동(현재 동자동)이었다. 양동 및 도동은 악명 높은 [[사창가]]이자 판자촌으로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이외에 서울 도심부 달동네는 실상 모두 판자촌이었다. 정부에서 아무리 단속해도 이촌향도 현상으로 서울로 몰려온 사람들이 무허가 판잣집을 짓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제 고도성장기에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 하면서 서울, 부산 등의 대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주택공급은 인구증가 폭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교외지역에 판자촌, 비닐하우스촌도 계속 늘어났다. 이 때문에 주거개선 사업은 대한민국 정부의 최우선 정책사업 중 하나로 [[와우아파트]], [[시범아파트]] 사업, 소공동 개발, [[여의도]] 개발, 심지어 강남 개발(당시는 [[영동#s-3|영동]] 개발)까지도 명목은 '주거환경 개선사업'이었다. 서울 도심부 판자촌은 서울 외곽으로 토지를 불하해주는 조건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며 철거되어갔다. 이렇게 해서 생긴 마을이 [[당고개역]] 인근에 있는 당현천마을, 양지마을, 합동마을, 희망촌, 그리고 중계본동 백사마을 등이다. 한 가구당 7~8평 남짓의 땅을 불하해주기로 하고, 무턱대고 대충 토지정리만 해놓은 빈 땅에 서울 판자촌 주민들을 실어날라 텐트 하나 주고 알아서 살라고 했다. 당시 증언들을 보면 4가구에게 할당된 30~40평 정도 되는 땅을 백묵으로 선만 긋고 각 가구에게 텐트 하나 주고 알아서 집 짓고 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정책의 부작용이 제대로 나타난 것이 바로 [[광주대단지사건]]이다. 어쨌든 이 정책을 통해 서울 도심 판자촌은 상당 부분 철거되었다. 1980년대 들어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및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도처에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무허가 건물이 철거되었다. 이렇게 되자 음지에서 불법적인 건설 사업이 활성화되었다. 서울 [[강남3구]] 및 [[관악구]] 외진 곳에 [[비닐하우스]] 등을 이용해 무허가 판잣집을 건설하고 철거민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현재 강남3구에 존재하는 판자촌이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노원구]] 상계동 재개발 사업도 일대의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계동 올림픽]]. 노원구 하계동, 공릉동 일대에는 그 뒤에도 이런 무허가 주택들이 난립해 있다가 1990년대 초반에 모두 철거되었다. 한때 여기저기 난립해 있던 강남3구 판자촌은 재개발과 철거를 진행하면서 몇 곳으로 정리되어 갔다. 관공서에서 다른 판자촌으로 이주시켜줬다는 증언도 존재하며, 자발적으로 다른 판자촌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 서울 강북지역 판자촌은 이런 저런 개발을 통해 현재는 판자촌 형태에서는 벗어났다. 반면 서울 강남지역 판자촌은 아직까지도 정리되지 않은 편이다. 서울의 중심이 종로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면서 강남 부유층 거주지가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강남3구 외진 곳에 있던 판자촌도 더 이상 개발의 손길에서 자유로운 곳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온갖 투기꾼들이 판자촌 판잣집 매매에 꼬이기 시작했다. 현재 강남3구에 위치한 판자촌은 더 이상 규모가 늘어나지 못하게 감시하면서 다른 곳으로의 이주를 유도하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강남3구 판자촌이 현재까지도 계속 방치된 상태로 머무르고 있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서울시에서는 1982년 이전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에 대해서만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이유는 계속 무허가 건물에 대해 소유권을 인정해주면 아무 데에나 적당히 판잣집 짓고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는 행태가 만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남3구 판잣촌은 대체로 1981년 이후에 형성된 곳들이다. 2. 강남3구에서 부유층 거주지가 확대되면서 과거 오지, 버려진 땅에 가까웠던 판자촌들이 갑자기 가치 좋은 땅으로 바뀌었다. 즉 재개발이 이루어질 경우에 판자집 하나의 가치가 갑자기 수십억원대 아파트가 되는격이다. 그래서 기존 원주민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꾼과 브로커들도 한몫 잡겠다고 판잣집을 사들여서 투기에 기어들었는데, 이 때문에 단순히 판자촌 거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이전해 살 수 있도록 보상해주는 문제가 아니게 되어서 아사리판이 벌어지게 된것. [[은마아파트]]가 오래되었음에도 현재까지 재개발이 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이와는 별개로 판잣집의 형태도 진화했다. 과거에는 나무 판자 등을 모아 만든 말 그대로 '판잣집'이었지만, 비닐하우스의 보급으로 인해 비닐하우스로 집을 짓고 사는 형태로 발전했고, 최근에는 단열재가 들어간 조립식 패널 등을 이용하거나 보수하면서 콘크리트 블록을 이용해서 리모델링되는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